[北 무력시위]美 맞대응 자제하며 신중모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3일(현지 시간) 페테르 펠레그리니 슬로바키아 총리와 회담하기 직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북한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고 말했다(왼쪽 사진). 4일 일본 도쿄 거리에서 한 여성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소식을 보도하는 TV 스크린 앞을 지나고 있다. 워싱턴·도쿄=AP 뉴시스
북한이 3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을 접한 미국의 반응은 신속하고도 신중했다.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등 관련 부처들이 강경한 맞대응을 자제하며 수위를 조절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한을 달래는 모양새다. 그러나 북한이 향후 도발 강도를 높여갈 경우 ‘화염과 분노’식 대응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면밀 분석 속 절제된 대응
트럼프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밝힌 시점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이뤄진 뒤 13시간 만이었다. 그는 “김정은은 북한의 대단한 경제적 잠재력을 알고 있고, 이를 방해하거나 중단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경제발전 가능성을 다시 거론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북-미 합의를 깨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아직 협상의 문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협상의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수위 조절을 한 저강도 도발로 보이는 만큼 미국도 북한의 의도 등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절제된 대응을 내놓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에게서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을 당시에는 화를 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Vox)는 4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자신을 속인 것처럼 화를 냈다(pissed off)”며 “고위 참모진이 그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기 전에는 어떤 트윗도 올리지 말라’고 강하게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다음 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올릴 때에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전날 밤처럼 벌컥 화를 내지는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北, 불만 표출하며 트럼프 압박”
뉴욕타임스는 이날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 아버지 때 쓰인 낡은 각본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성과로 자찬해온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 중단이 깨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음 차례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협상에 흥미가 없는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 인사들이 있다”며 북한이 이들에게 협상 중단의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미 국가이익센터(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국장도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긴장 고조의 위험한 사이클로 되돌아가는 초기 단계에 놓인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3일 마이클 모렐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북한과 협상이 결렬되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분명히 경로를 바꿔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