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도발 ICBM 아니다” 평가절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4차 남북 정상회담 제의에 4일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응수했고, 워싱턴은 “(발사한 미사일이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다”며 즉각적인 대응을 유보했다.
북-미가 서로 비핵화 판을 뒤엎진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동시에 미 본토가 아닌 한국을 사정권으로 둔 미사일을 쏴 북핵 위협에 대한 한미 간 균열을 유도하려는 평양의 의도가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청와대는 6일 침묵을 지키며 후속 대응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낙관적인 상황 인식은 2월 ‘하노이 노딜’에 이어 다시 한 번 뒤집어졌다. 북한은 4일 약 1년 5개월 만에 도발을 감행했고, 문 대통령의 ‘신한반도 체제’ 구상의 실현도 상당 기간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 이후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북한이 결국 택할 수 있는 카드는 국지 도발밖에 없다’고 지적했지만 청와대는 이를 외면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이라도 냉정하게 현 상황을 진단하고 새롭게 후속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ICBM 모라토리엄(유예) 약속을 어긴 게 아니다”며 백악관은 북한의 의도된 움직임에 매번 반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이 틈을 이용해 북한이 한국을 염두에 둔 국지적 도발 행위를 이어 나갈 경우 청와대의 대응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백악관처럼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맞대응에 나설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부가 자칫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면 북한이 (체제 위협 등) 안전 보장 프레임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비핵화에 대한 남북미의 기대와 상황 인식이 각기 다른 데서 빚어지는 구조적인 어려움이 이번 북한의 도발로 다시 한 번 극명히 드러났다. 자국(自國)에 미치는 위협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북-미와, 어떻게든 양측을 다시 마주앉게 하려는 우리 정부의 셈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9일 집권 2주년을 앞두고 있는 청와대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FAZ 기고문에서 “이제 남북의 문제는 이념과 정치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지만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도발을 계기로 중도 진영에서도 “역시 북한을 믿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향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 여론이 상당히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결국 대화를 통한 비핵화와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본 방침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남북 간 물밑 접촉 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9일 TV 생중계로 진행되는 취임 2주년 대담에서 4차 남북 정상회담과 비핵화 협상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모는 “문 대통령이 북측을 향해 ‘이런 (미사일 발사) 행위가 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직접 밝힐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