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에게 협치는 생존 문제”, “거부 정치로 정치권 ‘자폭’할 수도”
이승헌 정치부장
―문 대통령이 취임식 전에 야당을 방문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나.
“꽤 좋은 징조(pretty good signal)이지만 그런 건 기본이다. 장담하건대 문 대통령이 야당과 지속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거부 정치’(veto+cracy)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몇 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표현인데, 양당 체제에서 서로 반대만 하다가 정치적 교집합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자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는데 대화가 쉽겠나.
“협치는 선택(option)의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승자다. 그렇다면 야당에 남은 건 반대할 권리(veto)밖에 없다. 그런데 민주주의에선 대통령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라도 몇 번이고 먼저 야당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은 잘 모를 테고 나중에 절감하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선거 기간 내건 적폐청산은 어떻게 생각하나.
문 대통령이 2일 사회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선(先)적폐청산, 후(後)협치 가능’ 원칙을 선언하자, 뭐에 이끌리듯 떠올라 뒤적인 게 후쿠야마 교수의 2년 전 인터뷰였다. 당시만 해도 그냥 미래에 대한 전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고수의 통찰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장면이 적지 않다. 원로 간담회에서도 후쿠야마 교수와 비슷한 조언이 있었다. 정치권의 오랜 책사 중 한 명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패스트트랙 정국 해법과 관련해 “이런 국면에서는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문제를 풀기가 힘들다”고 한 게 그랬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 갈등과 협치 부재가 오롯이 문 대통령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후쿠야마 교수가 2년 전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도 ‘거부 정치’ 그 자체였다. 현대 정치가 좌우로 극단화되면서 서로 반목하는 게 하나의 현상(status quo)이 된 것이지, 누구의 잘못이 거부 정치의 1차적 원인은 아니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거부 정치 현상을 그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제 아래선 결국 대통령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10일 취임 2주년을 맞는 문 대통령이 이후 어떤 정치적 행보를 할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한 가지. 2년 전 지금 상황을 예언했던 후쿠야마 교수는 거부 정치를 해소하지 못하면 그 후 어떤 일이 생길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거부 정치가 계속되면 결과적으로 정치권 전체가 자폭할 것이다. 그럼 기성 정치권 모두 정치 혐오의 대상이 된다. 선거를 앞두고 더 그럴 것이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장담할 수 있다(I personally guarant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