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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박형준]“혁신을 막는 것은 사람이다”

입력 | 2019-05-07 03:00:00


학교 축제를 준비 중인 고지마치중 학생들. 아사히신문 제공

박형준 도쿄 특파원

최근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한 공립중학교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요미우리, 아사히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고지마치(麴町)중은 작년부터 각 학급을 전담하는 담임을 없앴다. 그 대신 각 학년에 배정된 모든 교사가 팀을 이뤄 전체 학생들을 돌본다.

처음부터 매끄럽게 진행된 건 아니다. 원래 1학년에는 4개 학급에 8명의 교사가 배정돼 있었다. 작년 초 8명의 교사를 4개 팀으로 나눠 1주 혹은 2주간 학급을 바꿨다. 작년 하반기부터 교사들이 1개월 이상 학급을 맡는 제도가 정착됐다. 학급과 가장 잘 맞는 교사가 그 학급을 오래 맡는 식이다.

이 혁신을 주도한 사람이 2014년부터 재직 중인 구도 유이치(工藤勇一·59) 교장이다. 그는 요미우리에 “도쿄도 교육위원회 근무 시절 학부모 불만의 대부분이 담임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됐다. 노련한 담임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어떤 담임은 헤매더라”며 폐지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시행 초기 교사들이 ‘전원 담임제’에 놀랐지만 1년이 지나니 반응이 달라지더라”며 “교원끼리 긴밀하게 연락하고, 학생 전체를 생각하게 됐으며, 집단따돌림 문제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학교 웹사이트에 있는 교장 인사말에서 그가 던진 메시지는 ‘(학생들의) 자립하는 힘’이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숙제도 없앴다. 똑같은 숙제를 내주면 이미 내용을 아는 학생들에게는 시간 낭비가 되기에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게끔 하자는 의도다. 학교 축제, 수학여행 때도 학생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짜게 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없앴다. 그 대신 교과서의 1개 단원이 끝날 때마다 ‘단원 테스트’를 실시한다. 이 같은 개혁에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는 높다. 특히 상당수 학부모들이 “교사와 더 폭넓게 접촉할 수 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줬다고 했다.

공립학교인데 어떻게 이처럼 과감할 수 있을까. 교육당국 등의 눈치를 보지는 않을까. 구도 교장은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문부과학성의 룰을 지키면서도 학교장 재량으로 이만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일본에서 학급 담임제와 정기 시험을 규정한 법은 어디에도 없다. 각 학교가 문부과학성의 학습지도요령을 신처럼 모시면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도쿄 특파원으로 지내면서 최근 일본으로 유학 온 한국 중고교생 소식을 자주 접한다. 매일 등교를 거부하는 중학생, 대입 입시 중압감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고교생…. 대부분 “한국 교육에선 숨이 막힌다”며 탈출하듯 일본으로 왔다. 과연 한국 학교와 교사들은 이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을까. 구도 교장은 저서 ‘학교의 당연한 것을 없앴다’에서 “학교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상당수는 지금까지의 ‘관례’에 따른 것이다. 혁신을 막는 것은 ‘법률’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