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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76〉자기주도성과 똥고집

입력 | 2019-05-07 03:00:00

‘청개구리’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소위 ‘청개구리’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하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안 한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하지 말라고 하면 그제야 하겠다고 온갖 짜증을 내는 아이들. 도대체 왜 그럴까?

청개구리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을 잘 살펴보면 언제나 지나치게 자기 주도적이다. 모든 것의 주인공이 자기가 되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한다. 아니, 주인공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지 모른다. 이 아이들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자신을 헤집을까 봐 불안한 것이다. 이 아이들이 가진 주도성은 사실은 ‘지나친 불안’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이 제안하고 진행하고 결정한 것만 받아들여야 마음이 편안하다. 밖에서 오는 자극이 두렵다. 그래서 자신이 한 것만 고수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안타까운 것은 어른들 눈에는 아이의 모습이 그저 심각한 고집쟁이로만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설득하다가 끝내는 이해하기가 어려워 “어우, 이 고집불통! 너 진짜 이상한 애다. 내가 너랑 다시는 노나 봐라”라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끝이 나면 아이의 마음은 더 불안해진다. 매번 일이 이런 식으로 끝나면 아이는 자라서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남의 충고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짜 고집불통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변덕스럽게 보여도 편안하게 대해줘야 한다. 그래서 ‘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는 안전하구나’라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 아이가 처음에 안 한다고 고집을 피울 때는 “엄마 말도 들어봐. 괜찮을 때도 많거든. 한 번 해보지 않을래?”라고 말해준다. 그래도 아이가 싫다고 하면 ‘쿨’하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안 한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다시 하겠다고 할 때도 선뜻 “그래∼, 네 생각대로 한번 해봐”라고 해줘야 한다. “아까 하라고 할 때 안 했으니까 안 돼”라며 비난하면 안 된다. 부모들은 종종 “너, 그때도 그랬잖아?”라면서 전에 있었던 일을 끄집어내서 아이를 혼낼 때가 있다. 뭔가 따끔하게 전달하려는 의도인 것은 알지만, 아이는 그저 부모가 자신을 비하하는 것으로밖에 느끼지 않는다. 아이의 잘못을 나열하며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항상 ‘결국 아이가 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오, 잘하네. 혼자서도 잘하는구나. 다음에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도 한번 해보자.” 이렇게 기분 좋게 끝내야 한다. 많은 부모가 이렇게 끝내지 못하고 꼭 화를 내고 마는 것은, 부모 자신이 아이의 그 꼴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꼭 이기려고 한다. 이길 수 없으니, 화를 심하게 내고 끝을 내고 만다.

청개구리라는 말을 듣는 아이가 상담을 오면 나는 초등학생만 되어도 이런 얘기를 해준다. “뭔가를 스스로 하려고 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야. ‘자기주도성’이라고 그런 것을 가리키는 용어도 있어.” 보통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그래요?”라고 되묻는다. “그래, 자기주도성. 너도 좀 들어봤지? 자기주도성은 멋진 거야. 자신의 일에 주인공이 되어서 스스로 결정하고 해보면서 책임을 지는 거거든. 그런데 너는 아마 네가 직접 안 하면 네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러는 것도 있을걸.” 그러면 아이들이 약간 인정한다.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야. 그런데 그게 심하면 고집이 돼. 너무 심하면 앞에 글자까지 하나 더 붙지. 똥, 고, 집!” 이렇게 설명해주면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어떤 아이는 편안해져서 “우리 엄마가 매번 저보고 똥고집이라고 하는데”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뭐든 적당해야 좋은 거야. 근데 너는 좀 안 적당한 거지. 주도성은 원래 좋은 거야. 네가 잘하긴 하는 건데, 이게 자꾸 똥고집 쪽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돼. 반대 길로 가는 것도 좀 생각해보기는 해야 돼”라고 조언해 준다. 이렇게 설명하면 아이들이 의외로 잘 받아들인다.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칠 때는 적당한 위트를 섞어가면서 진실하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흥분도, 화도, 불안도 툭 가라앉는다. 아이들은 편안하게 해 줄 때 제일 잘 받아들인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