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다니 한일 다문화가정의 행복
축구 얘기만 나오면 대화가 끊이지 않는 ‘축구 가족’이 서울 우장산공원 축구장에서 공을 든 채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정민 씨, 큰아들 태양, 막내 담율, 둘째 도윤, 다니 루미코 씨. 신정초 6학년인 태양은 골키퍼, 5학년인 도윤은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축구요? 대한민국 남자들 다 그렇듯이 군대에 있을 때 조금 한 정도였죠. 제대한 뒤에는 한일전이나 월드컵 빼고는 본 적도 없어요.”(김 씨)
“남편이 지금은 축구밖에 안 봐요. 직업이 가수이고 연예인인데 음악이나 예능 프로는 뒷전이고 새벽부터 일어나 해외 축구를 챙긴다니까요.”(다니 씨)
엄마 다니 루미코 씨. 도쿄의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미요시 지나쓰’라는 예명으로 1999년 가수로 데뷔했다. 한동안 연예계를 떠났다가 2005년 지금의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한국 무대 데뷔를 알아보다 지인의 소개로 2006년 김 씨를 만나 연애 2개월 만에 결혼했다. 초중학교 때는 꽤 유망한 농구 선수로도 활약했다.
“농구를 할 때 다른 일본 가정처럼 부모님들이 별로 신경을 안 썼어요. 중요한 경기가 있어도 혼자 다녀오곤 했죠. 한국에서는 달라요. 훈련 때도, 경기 때도 제가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등 돌봐야 해요.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아요. ‘이게 가족이다’라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다니 씨)
“우리 애들이 정말 엄마를 잘 만난 것 같아요. 연년생을 포함해 아들 셋 키우기가 쉽지 않을 텐데 힘든 내색 한번 안 했거든요. 예전에는 육아 방식이 맞지 않아 다툼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아내에게 맡기고 있어요.”(김 씨)
‘한일 연예인 커플’이 축구로 뭉친 계기는 프로축구 FC서울이 운영하고 있는 ‘다문화·일반 가정 자녀가 함께하는 유소년 축구교실’이었다. 장남이 만 6세 때 한 살 터울의 형제는 여기서 같이 축구를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한 아이들이 점점 축구에 빠지더라고요. 도윤이는 축구부가 없는 학교에 다니며 유소년 클럽 활동을 하다 3학년 때, 또 다른 학교에서 선수로 뛰던 태양이는 5학년 때인 지난해 이 학교로 전학을 왔어요. 학교가 같아지니 돌보기가 한층 편해졌죠.”(다니 씨)
가끔 축구를 생각했던 아빠는 이제 가끔 다른 생각을 하는 ‘축구인’이 됐다. 3년 전부터 프로축구 광주FC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고, 공식 응원가 ‘승리의 함성’을 만들고 불렀다. 매주 토요일에는 풋살 동호회에서 ‘최고령 공격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아이들의 연습 상대라도 돼 주려고 오랜만에 축구화를 신었죠. 그런데 제대로 하려면 실력은 물론이고 체력이 받쳐줘야 하겠더라고요. ‘나이 많은 아빠도 이렇게 노력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데 이제는 ‘운동 중독’이 됐어요.(웃음)”(김 씨)
“이왕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니 아이들에게 ‘정말 축구를 잘해야 돼’라고 얘기해요. 실력도 없는데 경기에 출전하면 ‘아빠가 연예인이라 봐주나 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남편에게도 부탁이 하나 있어요. 축구를 볼 때도 아이들과 함께해 줬으면 해요. 혼자 몰두해 아이들이 뭘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할 때가 많거든요(웃음). 그것 빼곤 다 좋아요. 축구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함께하는 게 행복하니까요.”(다니 씨)
‘축구 가족’은 5일 ‘어린이날 기념 FC서울 유소년 축구축제’에 다녀왔다. 김 씨는 막내 담율이가 멋진 중거리 슛을 넣었다며 흐뭇해했다.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는 말했다. “가족이 서로 맺어져 하나가 돼 있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유일한 행복”이라고. 5명의 가족은 축구를 통해 ‘더 단단하게, 더 건강하게’ 하나가 된 듯 보였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