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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강은지]일회용품 없는 제주도의 앞선 실험

입력 | 2019-05-08 03:00:00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불편하지 않으세요?” 마트에서 종이상자를 없애고,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을 치운 현장을 보기 위해 2일 제주도를 찾은 기자가 현지에서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장을 봤는데 물건을 담아 갈 종이상자가 없다면? 조문객들이 몰려드는데 일회용 컵이 없다면? 기존에 쓰던 일회용품이 사라진 삶은 상상만 해도 ‘불편투성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들은 답은 생소했다.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답이 일반적이었다. 간혹 “이게 훨씬 낫다”는 답도 돌아왔다. 그리고 실제 현장을 가보니 그곳 사람들은 사라진 일회용품에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않았다. 마트의 자율포장대는 한산했다. 노끈과 테이프를 비치해 정 필요한 경우 종이상자를 유료로 구입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오전 내내 누구도 종이상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천 장바구니 3개에 당면과 생선, 달걀 등을 담아 간 이소현 씨(44)는 “종이상자에 담아 가면 집에서 테이프를 떼 낸 뒤 상자를 펴서 배출해야 해 더 귀찮다”며 “장바구니는 돌돌 말아 뒀다 나중에 다시 쓰면 되니 훨씬 편하다”라고 말했다.

장례식장도 마찬가지였다. 일회용품이 사라진 장례식장에선 깨끗하게 씻은 그릇과 컵으로 조문객을 대접했다. 장례식장에선 조문객들이 한꺼번에 몰릴 수 있으니 ‘아무래도 불편하다’는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한결같았다. 되레 “일회용품이 없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로 힘든 일 없다”는 웃음소리만 쏟아졌다. 다만 장례식장 직원들도 처음에는 걱정이 컸다고 했다. 일회용품을 없애면 설거지가 늘어 직원 수를 늘려야 하나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마주한 ‘일회용품 없는 현실’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직원을 더 뽑아야 할 정도로 일이 늘지도 않았고, 설거지 거리가 많아진 대신 일회용품을 계속 채우고 치우는 일이 사라졌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5월부터 개인 컵에 음료를 담아가는 고객을 대상으로 음료값 300원을 할인해주거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점수(에코별)를 적립해주고 있다. 그 결과 1년간 전국 매장에서 사용한 개인 컵은 1081만9685개에 달했다. 전년도 같은 기간에 사용한 개인 컵 수(389만6635개)와 비교해 3배 가까이로 늘었다. 개인 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올 상반기 중 ‘일회용품 사용 저감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로드맵에는 제주도의 성공을 계기로 장례식장 내 일회용품 사용 제한 등이 담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일회용품이 사라지면 불편할 것이라고 지레 걱정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제주 지역 주민들을 보면서 ‘인간은 적응의 동물’임을 새삼 깨달았다. 적응까지 시간이 필요할 수는 있어도 적응하지 못할 일은 없다. 그게 우리의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면 더더욱….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