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초심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꼭 맞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적절한 초심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사원으로 시작해서 어느 시점이 되면 누군가의 상사가 되는 시점이 온다. 단순히 선배가 아니라 팀원의 인사평가를 하고 프로젝트를 이끄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매니저라고 칭한다. 의외로 많은 매니저들은 ‘직원 때의 초심’을 갖고 일하면서 아랫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매니저가 돼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해야 하며, 능력이 있는 팀원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맡겨 놓고 안심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경우가 그렇다. 구체적인 칭찬도, 개선해야 할 점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피드백도 하지 못하거나 회피한다. 매니저도 처음에는 서투르지만 서툰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선 노력도 안 하게 된다.
이제 “초심을 지키자”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지금의 역할에 맞는 초심을 갖고 있는가. 혹은 지금의 내 자리에 맞는 초심이 무엇일까 고민해본 게 언제였는지에 대해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직장 경력이 10년이 넘고 2, 3명의 직원을 평가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지금 나의 상황에 맞는 초심이 무엇이어야 할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갑자기 수많은 사람, 사업을 이끌게 된 경우에도 적용된다. 자신의 역할에 맞는, 조직이나 내 이익에도 부합하는 초심이 무엇이어야 할지 고민을 할 때, 초심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유효하다.
얼마 전 가까이 지내는 동료들과 차 한 잔을 하면서 ‘2019년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이야기를 나눴다. 종종 나는 고객들과 만날 때 ‘20년 넘는 경력’을 강조할 때가 있다. 과거의 경험을 파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수치로 나타나는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동안 계속해서 현재를 살아왔는지, 아니면 과거의 태도나 방식을 그저 반복하면서 살아왔는지다. 현재의 나는 오랜 경력을 갖고 과거를 살고 있는지, 아니면 2019년을 살고 있는지 돌아봤다. 여기서 묻게 되는 것은 나는 시대와 현재에 맞게 나의 초심을 업데이트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미래를 향한 희망보다는 과거의 추억으로 살아가며 따라서 말이 많아진다”고 썼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되새기며 살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 시대를 살고 싶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디지털 시대는 역사상 최초로 나이 든 세대가 나이가 어린 세대보다 더 모를 수 있는 시대다. 나이 많은 선배에게만 배우면 그 시대를 살기 힘들다. 나이가 들수록 선배보다 후배에게 배우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 초심을 지키고 싶지 않다. 계속 업데이트하고 싶을 뿐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