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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현장칼럼/이진구]처벌과 교화 사이… 포기해선 안될 ‘우리의 믿음’을 보았다

입력 | 2019-05-08 03:00:00

수원구치소 교도관이 돼보니




경기 수원구치소 내 기·미결수들이 생활하는 감방(왼쪽 사진). 7, 8명이 함께 지내는 혼거방으로 세면대가 있는 화장실, 싱크대, TV등이 설치돼 있다. 방 배정은 마약, 사기 등 범죄 유형별로 분류하고, 같은 범죄로 들어온 사람들은 함께 있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최근 영화에서 수감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임의로 교도소장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담배는 반입도 안 되지만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어 피우는 건 불가능하다. 오른쪽 사진은 감방 밖 복도다. 수원구치소 제공

이진구 논설위원

우리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믿음을 갖고 있을까. 범죄에 대한 처벌은 어느 선까지가 타당한 것일까. 피해자를 대신해 속이 후련할 정도로 처벌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교화에 무게를 둬야 하는 걸까. 혹시나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난달 22, 23일 경기 수원구치소에서 교도관 체험을 했다. 그곳은 ‘밖’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요즘 콩값 비싸서… ‘콩밥’ 못줘요”

구치소는 재판 중인 사람들이 형이 확정될 때까지 수감되는 곳이다. 하지만 수용 문제 때문에 구치소에도 기결수가 있고, 교도소에도 미결수가 있다. 지상 8, 9층짜리 2개 동으로 구성된 수원구치소에는 1700여 명이 수감돼 있다. 대부분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미결수들인데, 내란 선동 등의 혐의가 확정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57)이 6년째 수감 중이고, 최근에는 마약 투약 혐의로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씨(31)가 들어왔다. 교도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침 TV에 황 씨와 함께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 씨(33)가 나왔다.

“저분도 곧 여기 오나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수사하니까… 아마도….”(박 씨는 3일 합류했다.)

경기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는 ‘범털’, 수원구치소는 ‘개털’이 주로 수감된다는 속설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맞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서울구치소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 피의자들이 수감되는데 서울지법에서 재벌, 정치인 등 중요 인물 사건을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서울구치소에는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고 노태우 전 대통령,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도 이곳 동문들이다.

수감자들이 먹는 식사 그대로 저녁을 먹었는데 ‘콩밥’이 아닌 ‘찐밥’과 돈육제육볶음, 상추쌈이 나왔다. “저, 콩밥은 안 줍니까?” “요즘 콩이 비싸서… 못 줘요.”(올 1분기 콩값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1.4% 올랐다.) 수감자들은 자기 방에서 배식을 받아먹는다. 기상은 오전 6시 반이고, 오후 9시 반 이후는 취침. 미결수는 작업이 없기 때문에 방 안에서 TV나 책을 보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가수 정준영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화책을 보며 지낸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모든 미결수에게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19금 등의 문제만 없으면 만화책도 반입이 가능하다. 단, 공간이 좁아 1인당 약 30권 정도만 허용된다고 한다. 구치소에도 도서관이 있어 책을 빌려주는데 소설보다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한국의 소수자 운동과 인권정책’ ‘이중섭 평전’ 등 수준 있는 책이 더 많았다.

수원구치소 류주형 교위(왼쪽)가 징벌방 앞에서 기자에게 내부 규칙을 설명하고 있다.

―수감자들이 이런 책을 본다고요? 전시용 아닙니까?

“심심하니까요. 어려운 책 많이 봐요. 그래도 가장 많이 보는 책은 국어사전과 옥편이죠.” (왜요?) “법률 용어가 어렵잖아요. 재판 준비하느라….”

‘장첸’같은 미결수 7, 8명이 등뒤에

엄중 계호 수용동 순찰 시간. 일명 ‘징벌방’인데 수감 중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만 따로 모은 곳이다. ‘감방’에서 또 무슨 사고를 칠까 싶지만 워낙 다양한 인간들이 모이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고 한다. 과거에는 요구르트 구입이 가능했는데 재소자들이 요구르트에 빵을 넣어 발효해 술을 만들어 마신 뒤로는 금지됐다. 알갱이가 600개라 콘택 600이다, 아니다를 놓고 싸워 징벌방에 들어온 경우도 있다. 내기를 걸고 셌는데 600개가 안 되자 진 쪽이 분해서 때렸다고 한다.

자살 기도는 물론이고 스스로 못이나 바늘을 삼키는 자해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지나가는 교도관에게 침을 뱉거나, 수감자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을 징벌 차원에서 혼자 또는 2인으로 수감하는 곳이다. 여기서는 면회는 물론 TV 시청도 금지된다. ‘감방’ 속의 ‘감방’인 셈인데, 다른 수감자들과 부대끼지 않아 선호하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견디기 힘들어한다고 한다. 잠시 들어가 본 징벌방 벽에는 ‘×같다 징벌방, 다신 안 온다’ ‘3월 28일 징벌방 출소일. 부러워하지 마라 시간 금방 간다’는 등의 낙서가 가득 적혀 있었다. 나가 봐야 다시 원래 있던 감방으로 돌아가는 것뿐인데도 이렇게 나가기를 염원하다니…. 일반 수용자는 낮 동안은 면회, 재판 출석, 의료실 이용, 상담 등으로 이동이 많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영화 ‘범죄도시’의 장첸 같이 생긴 미결수 7, 8명이 안에 있었다. 왠지 뒤에서 누군가 머리를 내리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살인마 오원춘도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한다.

재소자 관리는 마약범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이들은 ‘남한테 피해 준 것도 아니고 내 몸에 한 건데 뭐가 잘못이냐’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잘 안 한다는 것. 또 구치소에서는 약을 할 수가 없어 정신상태도 다소 불안하다고 한다. 황 씨는 어찌 지내고 있는지…. 여성 수감자들은 3, 4층에 있는데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징벌방을 담당하는 류주형 교위는 “폭력범들은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처럼 으스대는 자기 과시욕이 많고, 절도범들은 의외로 대범하다”며 “‘욱’ 해서 저지르는 범죄 유형일수록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도 잘한다”고 말했다.

수감되면 대부분 마음이 굉장히 좁아진다고 한다. 식사 시간에 고기 한 점 더 먹었다고 주먹다짐도 일어난다는 것. ‘설마’ 했는데 실제로 다음 날 기상 시간 직전에 ‘마약방’(마약 사범만 있는 방)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10분 더 남았는데 깨워서란다. 불안감도 특징인데 형이 확정되지 않은 탓도 있고, 밖에 있는 애인이나 아내가 변심할까 봐 걱정하는 것도 이유라고 한다. 그래서 거의 매일 편지를 쓰는 사람이 많은데, 겉봉에 무지개색으로 만화를 그리고, 우표로 꽃을 만들어 붙인 것도 있었다. 자신이 이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무심코 보고 있는데 등기로 신청한 편지 겉봉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만약 아무도 받지 않는다면, 대문 옆 ○○○에 놓아주세요.’

의료실 이용도 잦은데, 교도관 말로는 수감자들은 자기 몸을 끔찍이 챙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뾰루지지만 “혹시 잘못되는 것 아니냐”며 의료실 진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진찰을 받으려면 방에서 나올 수 있어 이것도 이유라고 한다.

국가마저 처벌로만 다룬다면…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강력·흉악범죄가 빈번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처벌과 사전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화와 인권을 위해 수용시설을 개선해야 한다고 하면 “범죄자가 죗값을 받아야지 무슨 처우개선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야간 순찰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 매일같이 범죄자를 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지 궁금해 동행한 이희관 교위에게 물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강한 처벌과 열악한 처우로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게 결국 복수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요.”

―피해자가 있는데…. 처벌에 복수의 개념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죽을 때까지 가둬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나올 사람들인데…. 가혹한 처벌만 받고 달라진 게 없다면….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요.”

온갖 범죄자를 보다 보니 그도 인간성에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눈물로 참회했던 사람이 출소 뒤 가족보다 더 옥바라지를 도운 지인을 돈 때문에 살해해 다시 들어오는 걸 본 적도 있다고 했다.

“강력·흉악범일수록 어릴 적부터 가족과 주변에서 버려지고 학대받은 경우가 많아요.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늘 분노가 잠재돼 있고 언젠가 터져 나오지요. 가정 학교 사회에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그런 건데, 가장 마지막 보루인 국가마저 처벌로만 다룬다면….”

철문을 나섰다. 담장 하나 차이인데 공기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매일 출퇴근하는 교도관들도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현재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기·미결수는 약 5만 명. 사람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은, ‘사람은 바뀔 수 있고,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배신당할 때가 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수많은 전쟁과 범죄를 겪으면서도 거꾸로 가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마음 때문이 아닐까. 많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그들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교화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이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는지.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