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붕괴위험 아파트 돌아보니
긴급 보강공사가 필요한 D등급으로 판정된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 건물 외벽 곳곳에 균열이 가 있다(왼쪽 사진). 입주민을 대피시킬 수 있는 E등급으로 지정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건물 천장 패널이 떨어져 건물 철골이 드러나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건축물 안전진단에서 D·E등급을 받아 재난 위험시설로 분류된 아파트는 서울 시내 곳곳에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긴급한 보수·보강공사가 필요하다고 판정한 D등급 아파트 중에는 당장 입주민을 대피시켜야 할 만큼 위태로워 보이는 곳들도 있다.
6일 본보 기자가 찾은 서울 관악구의 B아파트는 4개 동 중 1개 동이 2006년 D등급 판정을 받았다. D등급을 받은 건물 외벽 곳곳은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철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파트 화단은 벽에서 떨어진 콘크리트로 수북하게 덮여 있었다. 이 아파트를 함께 둘러본 안형준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연구원장은 “외부 충격이 있으면 바로 무너질지도 모르는 사실상 E등급 아파트”라고 진단했다. 건물 벽에 난 큰 균열마다 ‘균열 계측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전부 고장 난 상태였다.
역시 D등급을 받은 서울 용산구의 J아파트 외벽 곳곳에서도 균열이 발견됐다. 금이 가면서 생긴 틈 사이가 3cm 이상 벌어진 부분도 있었다. 금 간 틈 사이로 물이 들어갔는지 건물 벽은 울퉁불퉁했다. 인테리어 공사 중인 이 아파트의 한 가구를 방문해 보니 뜯긴 벽지 사이로 가로 2m 길이 균열이 보였다. 이 아파트 주민 강모 씨(63·여)는 “천장에서 돌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붕괴 위험이 있는 아파트에 살던 주민 중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주민들은 하나둘씩 이사를 떠났다. 그 자리에 중국동포나 홀몸노인 등 영세민들이 입주해 목숨을 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업성이 낮은 지역의 아파트 단지는 재난 위험시설로 지정되더라도 재건축 시공사가 정해지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 노후 아파트가 즉각 재건축사업이 진행되고 집값이 고공 행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876가구 규모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아파트는 1996년 D등급으로 진단받은 뒤 20여 년 동안 재건축 사업이 표류했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시공사만 수차례 바뀌었다. 결국 2017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사업 시행자로 참여해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를 연계한 방식으로 사업성을 확보하면서 재건축이 가시화됐다. 구가 재건축에 실패한 붕괴 위험 아파트를 강제 철거하고 주민들을 이주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주민들과 이주비 등을 협의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아 구나 시가 쉽게 나설 수 없다는 게 구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무너질 위험이 크고 재건축이 어려운 아파트에 대해서는 구나 시가 예산을 들여 철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와 성북구가 2017년 1월 이주민들에게 임대주택과 주거이전비 등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E등급’ 판정을 받은 성북구 정릉 스카이아파트 4개 동을 철거한 전례도 있다. 박주경 한국시설물안전진단협회장은 “정부나 지자체가 E등급 건축물에 대해서는 예산을 들여 강제 철거하고 이주를 도와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일본처럼 아파트 관리주체가 건물에 대해 보험을 들고 보험금으로 건물 철거비나 공사비를 충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