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 대치에 중동 긴장 고조
외교일정 취소… 이란 코앞 이라크로 날아간 폼페이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이라크로 향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 시간) 데이비드 새터필드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보대행(왼쪽), 조이 후드 주이라크 미국 대리대사와 함께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걷고 있다. 그의 이라크 방문은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항공모함 및 폭격기를 중동에 배치하기로 한 지 이틀 만에 이뤄져 대이란 추가 제재를 논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라크에는 약 5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바그다드=AP 뉴시스
이에 맞서 팀 모리슨 미 백악관 특보 겸 대량살상무기(WMD) 선임 국장도 이날 “이란 추가 제재를 기대하라. 아주 빠른 시일 안에(very soon)”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등이 전했다. 양국의 강대강(强對强) 대치로 중동 전역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한 비핵화 협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미 핵합의 탈퇴 1년 만에 “핵개발 재개”
이란이 밝힌 ‘불이행’의 핵심은 그간 외부로 반출했던 한도 이상의 농축 우라늄 및 중수를 이란 내에 저장하겠다는 것이다. 핵합의 후 이란은 농도 20%의 고농축우라늄을 3.67%의 저농도로 희석시키고 보유량도 최대 300kg으로 제한했다. 3.67%는 경수로 연료로 쓸 수 있는 농도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중수로의 감속제 및 냉각제로 쓰이는 중수의 생산 한도도 130t으로 제한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 3년간 핵합의를 준수했지만 지난해 미국의 일방적 탈퇴 후 1년간 합의 준수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거의 얻지 못했다. 특히 온건파 로하니 대통령은 내부 강경파의 압박 및 여론 악화를 의식해 강경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난해 11월 미국이 경제 제재를 재개한 후 화폐가치 하락, 생필품 품귀, 물가 상승 등으로 국민들의 생활고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 전격 이라크 방문한 폼페이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면담을 갑자기 취소하고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를 찾았다. AFP통신에 따르면 그는 동행한 기자단에 “고조되는 이란 위협에 대응하고, 미국이 이라크 주권을 보호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도착 직후 아딜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와 만났다. 이번 방문은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 소수 시아파가 다수 수니파를 지배하는 시리아 등과 이란 중심의 시아파 동맹을 구축하려는 이란의 전략을 사전 차단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달 2013년 취임 후 최초로 ‘앙숙’ 이라크를 방문해 관계 강화를 시도했다.
CNN은 7일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란 군대와 대리인이 이라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미군을 공격 목표로 삼을 것이란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미 항공모함의 중동 배치도 이란이 페르시아만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에 싣고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정권의 외교정책에 대한 미국 내 비판도 상당하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7일 “이란 핵위기, 북핵 협상 교착, 미중 무역전쟁 재개 우려, 베네수엘라 정정 불안 등 핵심 외교 사안이 동시에 난항에 빠졌다. 대통령이 4개국에 관한 위험을 저글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매닝 미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대통령의 개인기나 정상회담에 치중한 외교의 한계”라며 “대통령은 외교를 부동산 거래와 비슷하게 보지만 외교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안보전문가 콜린 칼도 7일 포린폴리시에 “미국의 최대 압박이 이란과의 군사 대치만 심화시켰다”고 꼬집었다.
카이로=서동일 dong@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