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갇힌 ‘적자 청춘’]생활고에 공부 뒷전 ‘취준생 악순환’
사회 진출의 문턱을 넘기도 전부터 빚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대학 학자금과 주거 생활비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취업은 안 되고 빚만 늘어나니 하루하루가 적자(赤字) 인생이다. 빚을 갚으려고 학원 강사, 건설현장 일용직 등을 전전해 보지만 수입은 턱없이 모자라고 학업이나 취업 준비를 할 시간도 부족하다. 대학가에는 이처럼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 휴학생’ ‘장수 취업준비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 취업 위해 쓸 돈은 많은데 소득은 없어
요즘 청년들은 이전보다 취업 준비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10월 회원 4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 사교육에 연평균 342만7960원이 지출됐다. 어학시험, 자격증 준비 등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데만 매월 30만 원 가까운 돈이 나가는 셈이다.
최근 신한은행 설문조사 결과 20, 30대 사회초년생(입사 3년 이내)의 부채 잔액은 2017년 2959만 원에서 2018년 3391만 원으로 14.6% 증가했다. 청년층의 빈곤율도 많이 늘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8∼25세의 빈곤율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13.1%로 10년 전에 비해 2.1%포인트 상승했다. 76세 이상 노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은 증가 폭이다.
빚이 쌓인다는 것 말고도 문제는 또 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청년들의 노력이 정작 취업 준비에는 엄청난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충북 제천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취업 준비를 하는 이모 씨(32)는 대학 때 쌓인 학자금 대출만 1300만 원이다. 서울에 입사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드는 교통비, 교재비를 감당할 수 없어 종종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하루에 11만 원씩 번다. 이 씨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은 하루 종일 취업 준비를 하는데 나는 돈이 없어 일을 나가야 하니 구직 경쟁에서 밀릴까 봐 조바심이 난다”고 말했다.
○ “점점 꿈에서 멀어진다”
금융회사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김모 씨(26)는 러시아어 통역사란 꿈을 접은 지 오래다. 7년째 휴학하며 군대도 못 간 채 편의점, 고깃집 등 알바를 전전했지만 장학재단, 저축은행 등에서 빌린 빚이 아직 2000만 원 남았다. 김 씨는 “돈 걱정 하지 않고 공부만 했으면 졸업을 했을 텐데 돈이 안 모이니 대학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한숨지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대학 3학년생 정모 씨(22)는 주거비 부담이 커서 대출을 받다 보니 신용등급이 하락해 좌절했다. 정 씨는 “대출을 받자마자 신용등급이 5등급 안팎에서 7등급으로 확 내려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신용에 하자가 생기니 우울하다”고 했다.
○ 취업 후에도 빚 부담에서 못 벗어나
뚜렷한 상환 계획 없이 무작정 대출을 받은 청년들은 나중에 취업 등으로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오랫동안 빚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대학 시절 학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수천만 원을 대출받은 윤모 씨(29·여)는 아직도 대출 원금의 절반 정도를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 윤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집값과 물가가 올라 생활비 부담이 계속 커졌다”며 “애초에 너무 계획 없이 대출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청년들이 빚을 지는 원인에는 정부가 경기를 살리지 못하고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요인도 있다”고 말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