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회색과 검정의 구성 제1번: 화가의 어머니’, 1871년.
이 그림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1871년 어느 날 약속한 모델이 나타나지 않자 함께 살던 어머니가 대신 모델을 해준 것이다. 원래는 서 있는 포즈를 그리려고 했지만 당시 67세였던 어머니가 힘들어해서 의자에 앉은 옆모습으로 바꿨다. 노모가 10여 차례 어렵게 포즈를 취해 완성된 그림은 이듬해 왕립미술원에 전시됐다. 반응은 어땠을까.
지금과 달리 온갖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당시 영국은 ‘라파엘 전파’(1848년 결성된 영국의 화가 단체)의 감성적이고 화려한 그림들이 주류여서 이렇게 소박하고 청교도적인 그림은 외면받았다. 이 그림이 모성(母性)의 아이콘이 된 건 1930년대 미국에서였다. 193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 출품됐을 때 화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대중은 모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며 열광했고, 미국 정부는 1934년 이 그림의 우표까지 발행했다. 어머니의 초상 덕에 그는 미국의 국민 화가가 됐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