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2>‘하늘 위 응급실’ 사람들
지난달 25일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 의료진이 공사 현장에서 외상을 입은 환자를 닥터헬기로 실어와 응급실로 옮기고 있다. 닥터헬기 의료진은 부상 위험과 언제 출동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긴장 속에서 근무한다. 안동=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헬기 안에 누워 있던 조 씨가 “숨이 가빠…”라며 신음을 냈다. 김남규 안동병원 응급의학과장(39)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됐다. “12리드(심전도 검사)를 해보죠.” 김 과장의 지시에 응급구조사 서현영 씨(29·여)가 조 씨의 몸에 전극을 붙였다. 판독 결과 심장이 아닌 폐 질환으로 의심됐다. 김 과장은 이 결과를 곧장 스마트폰 메신저로 지상 의료진에게 전했다.
그 덕에 병원에서 대기하던 의료진은 조 씨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폐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해 중증 기흉을 밝혀 낼 수 있었다. 오른쪽 폐가 완전히 찌그러져 그대로 두면 사망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조 씨는 응급 시술 후 무사히 회복 중이다.
경북지역을 책임지는 안동병원 닥터헬기는 2013년 7월 4일 도입된 후 올해 3월 말까지 총 2098차례 출동해 1961명의 응급환자를 실어 날랐다. 전국 닥터헬기 6대 가운데 출동 횟수와 이송 환자가 가장 많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지난달 25∼27일 지켜본 이 병원 닥터헬기팀은 위험과 긴장 속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출동 대기 중에도 닥터헬기팀은 긴장을 풀지 못한다. 골든타임을 다투는 응급환자의 출동 요청이 언제 올지 몰라 병원 옆 별채 운항통제실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식사는 거르거나 컵라면으로 때우기 일쑤다. 운항통제실 책상 위엔 칼로리가 높은 간식과 인스턴트커피, 영양제가 잔뜩 쌓여 있었다. 지난해부터 닥터헬기팀에 합류한 정현진 간호사(26·여)는 “아침을 든든히 먹고 와서 하루를 버틴다”고 말했다.
의료진 옆에선 운항관리사 김진수 씨(38)가 쉴 새 없이 갱신되는 기상정보를 확인하느라 기상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헬기가 출동한 뒤에라도 구름 높이가 450m보다 낮아지거나 안개가 짙어지면 회항시켜야 한다. 환자를 신속히 이송하는 것 못지않게 의료진과 조종사의 안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북지역엔 특히 일월산(해발 1217m) 등 높은 산이 많아 상공의 날씨가 수시로 바뀐다. 지난달 21일에도 봉화군으로 환자를 데리러 가던 중 기상이 갑자기 나빠져 임무를 중단했다.
○ 소음 민원에 헬기장 쫓겨나기도
하지만 닥터헬기 운항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재 안동병원 옥상 헬기장은 7개월간 폐쇄된 상태다. 병원에서 20m가량 떨어진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의 크레인이 옥상 헬기장보다 높이 솟아 헬기의 이착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닥터헬기로 실어온 환자는 200m가량 떨어진 헬기 계류장에 내린 후에 다시 응급실까지 앰뷸런스로 옮겨야 한다. 그만큼 응급 수술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안동병원 닥터헬기팀 관계자는 “누구든지 언제 닥터헬기 덕에 목숨을 구할지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국민들이 생업에 바쁘고 다소 불편하겠지만 잠시 소음을 견뎌주면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안동=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