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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광현]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면

입력 | 2019-05-09 03:00:00

정책 전제 왜곡된 통계 기반 아닌지
경제실험 2년,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




김광현 논설위원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라는 비유가 있다. 물을 틀었는데 너무 차가우니 뜨거운 쪽으로 확 틀었다가 이번에는 다시 차가운 쪽으로 확 틀고 이런 걸 반복하는 걸 두고 이르는 말이다. 처음에는 차갑더라도 좀 있으면 따뜻한 물도 함께 나올 텐데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2년을 맞았다. 이 정도 지났으면 처음에 튼 물이 차가운 물인지, 뜨거운 물인지, 적당한 온도인지 알 때쯤 됐다. ‘샤워실의 바보처럼 굴지 말고 정책의 효과가 나오기를 더 기다려 달라’고 하기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경제학에서 장기와 단기를 가르는 구분이 대체로 1년인데 장기간 기다린 셈이다. 올해 초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인식하고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정책의 큰 방향을 수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에 대해 확실히 더 땜질하겠다는 말로 들려 우려스럽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문 정부 2년 차 정책평가 여론조사에서 정치 외교 사회 등 각종 정책 가운데 경제 점수가 가장 낮다. 62%가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잘하고 있다’는 23%에 불과하다.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면서까지 일자리를 최우선적으로 챙기겠다고 했는데 고용노동 분야에 대한 평가는 ‘잘못하고 있다’가 54%, ‘잘하고 있다’는 29%다.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는 일반 여론조사보다 더 혹독하다.

얼마 전 서강대 박정수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경제학회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임금상승률이 성장률보다 낮고’, ‘기업은 이익을 근로자에게 제대로 나눠주지 않고’, ‘임금이 오르면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토대가 애당초 왜곡된 통계에 기반한 것이라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현 정책의 전제인 만큼 세밀한 검증과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 것 같다.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 2가지를 들라면 단연 엔진과 브레이크다. 브레이크는 생명과 직결된 장치라 무엇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서 있는 자동차는 가장 안전하지만 자동차의 본질을 상실한 것이다. 경제에서 엔진은 역시 기업이다. 최근 들어 대통령이 격려차 기업들을 방문하고 있지만 갈수록 우리 경제에서 엔진의 파워는 떨어지고 정부가 핸드브레이크 거는 소리만 자꾸 들린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가 핀테크다. 혁신성장 차원에서 정부와 국회가 나서 KT가 대주주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에 6000억 원 규모의 증자 여지를 터줬다.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과거 KT의 입찰 담합혐의를 문제 삼아 검찰 고발조치까지 했다. 황창규 회장이 정치권 불법 후원금 지원으로 수사를 받는 가운데 세 번이나 구속됐다가 무죄 또는 무혐의 판결을 받은 이석채 전 회장을 불법채용 건으로 또 구속시켰다. 정부와 KT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모를 리 없는 금융위원회는 KT의 대주주 적격심사를 중단해 사실상 증자의 길이 막혔다. 사정이 어려워진 케이뱅크의 매각설까지 나오고 있다. 가속페달(액셀러레이터)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사회적 사안에서는 새는 두 날개로 난다는 격언처럼 형평성이 중요한 포인트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균형보다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선후도 뒤바뀐 데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마저 동시에 밟으면 잡음만 요란할 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우리 경제가 그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신바람을 일으킬 방안이 무엇인지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