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배려 없는 문화재 안내판 안내판 각도 너무 경사져 불편, 글자도 작고 빽빽해 읽기에 진땀 숭례문 영문표기마저 제각각
미국 국립공원 중 하나인 미시간주 리버 레이즌 내셔널 배틀필드 파크에 설치된 안내판. 휠체어를 타고 접근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해놓았다.(위쪽 사진) 숭례문 역사를 설명해주는 안내판들. 보도와 분리된 잔디밭에 세워져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접근하기 힘들다.
국보 1호 서울 숭례문 출입구에 서면 오른쪽의 안내판 3개를 볼 수 있다. 숭례문을 처음 찾은 국내외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보게 된다. 숭례문의 첫 이미지를 좌우할 시설물이지만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개 가운데 좌측 안내판은 숭례문에 대한 설명이 국문과 점자로 돼 있다. 가운데는 국문과 영문으로 된 설명이 써 있다. 우측 안내판은 안내도다. 이들 안내판은 보도와 분리된 잔디밭에 세워져 있다. 보도와 안내판 사이에는 자갈이 깔려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면 자갈밭을 지나야 한다.
전 한국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으로 관광 안내판과 안내지도 표준화를 연구하는 허갑중 씨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주요 문화재와 관광지 안내판이 모두 보도와 이어진 공간에 놓였는데 한국은 아니다”라며 “주요 관광지가 장애인을 얼마나 배려하는지는 국가 수준과도 직결되는 만큼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숭례문 안내판에 휠체어를 타고 접근했다고 해서 불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점자가 새겨진 안내판의 각도는 약 20도로 뒤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휠체어에 앉아서는 만지기가 수월하지 않다. 반면 출입구를 지나 서있는 안내판은 70도로 너무 경사져 있어 보기 불편하다. 허 씨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적정 각도는 45도로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시설을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판, 경사로, 계단 등 시설물을 개선할 예정이며 현재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숭례문 표기가 숭례문에서조차 제각각인 것도 큰 문제다.
문화재청이 공식적으로 쓰는 숭례문 표기는 ‘서울 숭례문’이다. 덕수궁처럼 나라 전체를 상징하는 문화재가 아니라면 표기할 때 소재지를 명시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게 아닌지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문화재청 스스로 정한 표기로도 통일돼 있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일부 안내판에는 글자들이 너무 빽빽하게 적혀 있어 보기 불편하다. 한글에 비해 영문 글자 크기가 절반 정도로 작은 것도 국제기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글자 크기를 달리하면 외국인에 대한 차별 행위로 인식된다. 따라서 병기하는 언어들의 글자 크기는 동일하게 해야 국제기준에 부합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숭례문 표기가 통일되지 않은 것은 수정하겠다. 지하도 안내판 오자(誤字)도 관할 기관인 중구에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숭례문을 비롯해 국내 문화재와 관광지 안내판은 개선할 부분이 적지 않지만 개선은 지지부진하다. 문화재 안내판 설치 가이드라인은 문화재청이, 관광지 안내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두 지침 모두 2009년 이후 10년간 바뀌지 않았다.
안내판 설치 주체가 문화재청 문체부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하지만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도록 관리하는 기관은 없다. 담당 공무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기관마다 안내판을 설치하는 목적이 다르다 보니 안내판 모습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