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일 대표 완성차업체 혁신경쟁
“지금까지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시도와 이질적인 것과의 융합을 즐겨야 한다.”(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1월 신년사)
“기술 혁신으로 자동차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도요타가 쌓아온 비즈니스모델이 무너질 수 있다.”(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 8일 기업설명회)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와 도요타가 자동차 시장의 대대적인 변화를 앞두고 혁신 경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간 자동차 판매량 등 양적 성장에 역량을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CASE(Connected·연결, Autonomous·자율주행, Shared·공유, Electric·전기)’를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도요타는 올해 역대 최대 연구개발(R&D)비 집행을 예고하며 CASE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현대차 역시 2월 기업설명회에서 올해 8조8000억 원의 역대 최대 수준 R&D 투자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2023년까지 연간 8조 원 수준의 R&D 투자 규모를 유지한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특히 앞으로 5년 동안 CASE 분야에만 14조7000억 원을 투입해 모빌리티 공유 서비스, 전기차 플랫폼(차량 몸체) 등을 선보이기로 했다.
도요타는 2019년 3월 결산 기준으로 매출액이 일본 기업 최초로 30조 엔을 넘어섰을 정도로 경영 성과가 두드러진다. 반면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 시장 침체 등으로 실적 하락세를 보인 뒤 올해 1분기(1∼3월)부터 조금씩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일 대표 완성차 업체의 상황은 다르지만 위기의식은 다르지 않다. 기술 발전으로 완성차 업체 외에도 정보통신기술(ICT)·에너지·반도체 기업이 자동차 생태계에 진입하면서 한순간에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는 일찌감치 일본 현지의 대형 ICT 기업과의 기술 제휴 형식으로 새로운 CASE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주문형 차량 서비스 제공 회사인 ‘모넷 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이는 일본 증시 시가총액 기준 1, 2위 기업의 동맹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모넷은 도요타의 자율주행 시스템과 소프트뱅크의 인공지능(AI) 기술 및 빅데이터를 결합해 다양한 형태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도요타는 일본 전자제품 업체 파나소닉과도 공동 출자 형태의 법인을 설립하고 인터넷으로 차량과 주택을 연결하는 분야에서 힘을 합치기로 했다. 차량에 통신 기능을 더해 운전자에게 다양한 연결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넥티드카 분야에서 공동 사업을 추진하는 셈이다. 또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 제휴도 확대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정 부회장을 중심으로 혁신을 추진하면서 2022년 초까지 커넥티드카 가입자를 1000만 명까지 확보하고 수소전기차 넥쏘를 앞세워 친환경차 모델을 2024년까지 44개로 늘리는 등 구체적인 과제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도요타는 CASE 분야에서 다른 기업과의 협업 및 융합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이라면서 “현대차도 과거의 수직 계열화 모델에서 벗어나 도요타처럼 좀 더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지민구·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