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생각해보면, 우리 일행은 그날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게 아니었다. 단지 ‘맛있어야만 한다’는 신념을 먹은 것이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전문가란 자들은 차고 넘치지만, 사람들은 외려 만들어진 이미지와 우상에 짓눌린 채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물건을 사는 일이 ‘인싸’(인사이더)가 되는 일이란 강박 속에서 좀비처럼 산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많은 것들은 허상이고 신화다. 왜 ‘집밥’은 꼭 맛있을까(난 외식이 훨씬 맛난다). 왜 ‘주 52시간’은 꼭 행복할까(월급은 팍 줄어드는데 시간은 왕창 많아져도 고민이다). 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은 꼭 빠를까(협치는 더 느려진다). 그리고, 왜 ‘처제의 일기장’은 꼭 야할까(그냥 날씨만 적혀 있을 수도 있다). 알고 보면 맛있고, 행복하고, 빠르고, 야한 게 아니라 맛있어야 하고, 행복해야 하고, 효율적이어야 하고, 야스러워야만 한다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얼마 전 개봉해 역대 최단 시간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어벤져스4)도 난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이 영화에 대한 날 선 비판을 하는 것이 꺼려진다. ‘지루하다’ ‘내용이 뻔하다’ 같은 불평을 늘어놓다간 ‘아싸’(아웃사이더)되기 십상이다. “그동안 행복했어요. 어벤져스들, 안녕” 같은 감상적인 평을 남기는 것이 ‘인싸’의 올바른 애티튜드(태도)로 여겨진다.
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하며, 재미없는 영화를 재미없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이 더러운 세상. 어쩌면 사람들은 어벤져스4가 ‘재밌는’ 게 아니라 ‘재밌어야 한다’는 신념과 집단무의식에 사로잡힌 건 아닐까. 개봉 2주 전부터 웬만한 한국 영화들은 이 영화를 피해 달아날 만큼 무시무시한 브랜드파워를 앞세우며 80%에 육박하는 상영점유율로 극장가를 초토화한 어벤져스4. 이 영화에 긍정 반응해야만 시대정신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는 무시무시한 ‘어벤져스 현상’이야말로 영화 속 어벤져스들이 그토록 맞서 싸운 ‘괴물적 권력’이 아닐까 말이다.
어벤져스가 등장하는 영화 중 최고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2016년)라고 난 생각한다. 이 영화는 권력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구는 어벤져스들이 지킨다. 그런데 어벤져스들이 지구를 공격하면 지구는 또 누가 지켜주지?’ 그래서 어벤져스들을 통제하는 감시조직을 만들려는 국제기구의 움직임이 생긴다. 지금으로 치면 ‘공수처를 감시하는 공수처’쯤 된다. 이에 어벤져스들은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찬성파(아이언맨)와 “신념에 따라야 한다”는 반대파(캡틴 아메리카)로 나뉘어 보혁 갈등을 벌이는 것이다. 아, 어벤져스들은 알고 있었구나. 선을 집행한다는 신념에 마취돼 지구를 마구 때려 부수는 자신들 자체가 또 다른 빌런(악당)이 될 수도 있음을 말이다. 신념은 권력을 부르고, 권력은 악을 부른다.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