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과열지구 예비당첨자 수… 공급물량의 80%→500% 확대 20일 입주자 모집공고부터 적용… 시장선 “실수요자 대출 풀어야 효과”
정부가 현금 부자들의 ‘아파트 쇼핑’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무(無)순위 청약 제도를 개편한다. 1, 2순위 실수요자들이 놓친 물량을 현금 부자들이 쓸어 담는 이른바 ‘줍줍’(줍고 또 줍는다는 뜻) 현상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9일 국토교통부가 예고한 청약 제도 개편안에 따르면 20일부터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할 경우 청약 예비 당첨자 수를 현행 아파트 공급 물량의 80%에서 500%로 늘려야 한다. 해당 지역은 서울 및 경기 일부 지역(과천시, 성남시 분당구, 하남시), 대구 수성구, 세종시(행정복합도시 건설 예정지)다.
이 지역에서 아파트 100채를 공급할 경우 지금까지는 당첨자 100명 외에 예비 당첨자 80명을 뽑았지만 앞으로 예비 당첨자를 500명까지 늘려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비 당첨자 수를 크게 늘리면 최초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해도 실수요자인 1, 2순위 신청자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3월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서 분양된 ‘호반써밋 자양’은 일반 공급된 아파트 30채 가운데 22채(73.3%)가 무순위 청약으로 나왔다. 이 아파트 계약자 가운데 1, 2순위 및 예비 당첨된 사람은 8명에 그쳤다는 의미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분양한 홍제 해링턴 플레이스 역시 419채 가운데 171채(40.8%)가 무순위로 전환됐다.
두 곳이 인기가 없는 아파트 단지여서 무순위 물량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청약 경쟁률은 각각 10.96 대 1(호반써밋 자양)과 8.04 대 1(홍제 해링턴 플레이스)에 달했다. 분양 관계자는 “분양가 9억 원 이상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 자체가 안 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단 청약 신청은 했지만 자금 조달이 어렵거나 분양가가 비싸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물량이 대거 현금 동원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넘어갔다.
이 때문에 주택시장에서는 예비 당첨자 수 늘리기가 ‘정답’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실수요자들이 대출이 막혀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예비 당첨자를 아무리 늘려도 결국 무순위 청약 신청자가 분양받는 경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수요자에 한해 대출 규제를 풀어주는 등 본질적인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는 견해다.
예비 당첨자 수 확대는 20일 입주자 모집공고를 하는 단지부터 적용된다. 정부는 이번에 건설사 홈페이지와 본보기집에 청약 자격 체크리스트도 의무적으로 게시하도록 했다. 청약 자격을 착각해 계약이 취소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