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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집으로 첫 솔로음반 낸 계피… 독보적 보컬의 ‘음색 깡패’

입력 | 2019-05-10 03:00:00

“동요 리메이크는 오랜 꿈”




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가수 계피는 “동요집 제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이다”고 말했다. 유어썸머 제공

‘음색 깡패.’ 가수 계피(본명 임수진·36)의 별명이다. 단 한 어절로도 듣는 이를 KO시키는 목소리의 힘. 그가 ‘안 돼요…’(‘앵콜요청금지’)나 ‘만약이라는…’(‘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을 발성하는 순간, 가슴에 벼락을 맞고 포로가 됐다는 음악 팬들의 토로를 이따금 듣는다.

인디 팝 그룹 ‘브로콜리 너마저’와 ‘가을방학’에서 보컬로 활동한 계피가 최근 첫 솔로앨범을 냈다. 뜻밖에 동요집이다. 제목은 ‘빛과 바람의 유영’. ‘노을’ ‘오빠생각’ ‘옹달샘’ ‘과수원길’ ‘반달’ ‘개똥벌레’ 같은 명곡들을 재해석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계피는 “동요 리메이크는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꿈의 프로젝트”라고 털어놨다. 결심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난해 어느 날 동네 놀이터에서 우연히 본 광경이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봤어요. 전부 빨간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아이만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죠.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어요.”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했던 계피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입에 붙은 동요의 목록부터 만들었다. 발표 연도가 불분명한 곡이 많았다. “정보를 궁금해할 이들을 위한 책임감 비슷한 것”까지 생겼다. 뜻하지 않은 연구가 시작됐다. 전남 나주의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에 새긴 원곡 악보를 찾아내 불러보기도 했다.

“공공도서관에 가서 동요가 처음 실린 잡지의 발간 연도를 추적하기도 했어요.”

다수의 동요는 일제강점기나 6·25전쟁 무렵 만들어졌다.

“선율이 묘하게 애달프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슬픈 사연이 많았어요. 엄마가 아이를 홀로 두고 굴을 따러 가야 하는 상황이란 어땠을까요. ‘섬집아기’는 작사가가 부산 피란 시절 만들었다고 해요.”

‘꽃밭에서’를 녹음할 때는 목까지 메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날 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란 2절 가사가 전쟁 뒤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이란 그저 솜사탕 맛 추억만은 아니다. 계피는 “(동요집이지만) 내 나이 또래의 어른들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에서 17∼19일 이 앨범 전곡을 차례로 풀어내는 콘서트를 연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