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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처럼 관리 받는다”…프로구단 사용 첨단 장비로 무장한 생활체육

입력 | 2019-05-10 15:34:00


생활체육은 일상이다. 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국민생활체육참여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생활체육(일주일에 1회 이상, 1회 운동 시 30분 이상) 참여율은 역대 가장 높은 62.2%를 기록했다. 5년 전인 2013년 45.5%에 비해 16.7%P나 늘었다.

이러다보니 단순한 여가 생활을 넘어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체육 활동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프로 스포츠 구단에서나 사용할 법한 첨단, 고급 시설들로 생활체육인들을 사로잡는 곳들도 많다.

● 손동작 하나하나 미세교정

“지금 화면을 보면 ‘1:30’이라는 숫자가 찍혔죠. 1시 30분 방향으로 공의 회전축이 틀어져 있다는 이야기예요. 손이 틀어진 채 공을 비껴서 때리니까 그만큼 회전이 제대로 안 나오는 거죠.”

8일 서울 서초구 야구 교육센터인 엘론베이스볼랩(이하 엘론)에서 투구 레슨을 하던 강승현 감독(34)은 마운드 옆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500㎡ 남짓한 실내 공간 한편에 마련된 마운드에 선 일반인 회원이 포수에게 공을 던질 때마다 모니터 화면 속 숫자도 바뀌었다. 프로야구 롯데, 한화에서 11년간 선수 생활을 했던 강 감독은 “지금 같은 오버스로 폼으로는 12시 45분 방향이 됐을 때 좋은 회전이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손을 틀지 않도록 신경 쓰며 다시 한번 공을 던져보라”고 조언을 건넸다.

트래킹(Tracking) 시스템 ‘랩소도’를 활용한 레슨 장면이다. 엘론이 600여만 원을 들여 마련한 랩소도는 국내 프로구단은 물론 메이저리그(MLB)에서 사용하는 분석 장비다. 포수 뒤에 설치한 초고속 카메라가 투수가 던지는 공의 속도, 회전 수, 궤적 변화 등을 분석해 태블릿PC로 전송한다. 단순 회전수를 넘어 유효 회전(공의 움직임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 회전)수, 회전 효율(전체 회전 중 유효 회전의 비율) 등의 구체적인 정보도 제공한다. 홈 플레이트 기준 몇 m 앞에서 공이 예상궤도와 달리 휘기 시작하는 지도 알 수 있다.

강 감독은 “자신은 ‘좋은 공을 던졌다’고 느꼈지만 데이터상으로는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다양한 시도에 대한 변화를 수치로 확인해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프로 무대에서나 쓰이던 데이터 자료가 사회인 야구 교육장까지 오게 된 건 생활체육인들의 높아진 눈높이 때문이다. 최근 야구 관련 통계사이트, TV 중계 등에서 구체적인 데이터를 쉽게 접하게 되면서 사회인 야구인들 또한 자신의 구체적인 정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박철 엘론 대표(52)는 “야구 교육의 자기공명영상장치(MRI)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야구는 결국 사람이 가르치지만 구체적인 수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신뢰의 깊이가 다르다”고 했다. 엘론은 사회인 야구 외에도 엘리트, 유소년 교육도 병행한다.

사회인 야구 11년 차인 박종원 씨(40)는 “그동안 주변에서 ‘볼 끝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를 회전효율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하다보니 더 훈련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사회인 야구 7년 차 강은규 씨(32)는 “요즘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을 회전수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알게 돼 좋다.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을 명확히 알게 돼 구속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운드 흙에도 공을 들였다. 엘론의 마운드에는 올해 새로 문을 연 창원NC파크를 비롯해 MLB 구장에서 쓰이는 흙이 깔렸다. 입자가 작은 점토 위주의 이 흙은 과거 국내 구장에서 쓰던 흙보다 단단하고 덜 파인다. 강 감독은 “기존 무른 흙에 비해 디딤발이 덜 미끄러지는 차이가 있다. 선진 시스템으로 평가받는 미국식 마운드를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윙 궤도를 분석하는 ‘스윙 트래커’도 활용하고 있다. 배트 노브(손잡이 끝)에 장치를 달고 스윙을 하면 그 움직임을 블루투스로 추적해 스윙 궤도와 정확한 히팅 포인트를 찾아낸다. 예상 타구 속도, 비거리 등 정보도 제공된다. 유명 프로 선수와의 스윙 궤도를 비교해볼 수도 있다.

● 패턴 1만 개 드리블 프로그램

프로급 시설의 바람이 사회인 야구에만 부는 건 아니다. 한국프로농구(KBL)에서 13년간 선수 생활을 한 김현중 대표(38)가 지난해 서울 강남구에 차린 ‘퀀텀 바스켓볼 트레이닝(이하 퀀텀)’은 프로 선수들에게 입소문을 탈 정도로 좋은 시설을 갖췄다. 최근에도 여자프로농구(WKBL) 대표 스타 박지수 등이 이곳을 찾았다.

7일 찾은 퀀텀에서는 슈팅머신 ‘닥터 디시’를 활용한 훈련이 한창이었다. 퀀텀이 1000여만 원을 들여 미국에서 들여온 닥터 디시는 혼자서 슈팅 반복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다. 자신이 원하는 패스의 거리, 방향, 간격 등을 설정하면 이에 맞게 기계가 패스를 해주는 식이다. 패턴을 입력하면 한 지점이 아닌 여러 위치를 돌아다니며 슛 연습을 할 수도 있다. 링 주변에는 그물을 설치해 혹여 슛이 빗나가더라도 공이 다시 기계로 들어간다. 김 대표는 “슛이란 기술적인 훈련을 넘어 반복 훈련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량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드리블 훈련 기기인 ‘더 레이저’도 활용되고 있다. 한때 오락실에서 인기를 끌었던 리듬액션게임 ‘펌프’처럼 프로그램 화면에 맞춰 크로스 오버, 레그 스루 드리블, 턴 동작 등을 하면 모션 인식 센서가 이를 인식해 드리블 정확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폼이 어떤지를 직접 확인해볼 수도 있다. 공 2개를 활용하거나, 드리블 도중 허들을 뛰어넘는 등 프로그램 패턴만 1만여 가지나 된다.

개개인의 기량에 맞게 장비들을 활용하면서 회원들의 연령대도 더 넓어졌다. 유소년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레슨을 받고 있다는 최도영 씨(75)는 “그동안 (농구코트에서) 어깨 너머로 눈치 보며 배우던 농구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 좋다. 사실 아마추어가 하는 드리블 훈련이라는 게 뻔한데 더 레이저를 쓰면서 다양한 것을 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퀀텀은 상대적으로 농구를 접할 기회가 적은 여성들을 위해 농구와 피트니스를 결합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다양한 농구 문화 기틀을 마련해 농구 붐을 일으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