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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사라진 황사의 비밀

입력 | 2019-05-11 03:00:00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이사·기상산업연합회장

역사서에는 황사에 관한 기록이 여럿 내려온다. 주로 ‘흙비(土雨)’라 불린 황사는 조선왕조실록 내 연평균 2회 이상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중 명종 5년(1550년)의 기록을 보면 “한양에 흙비가 내렸다. 전라도 전주와 남원에는 비가 내린 뒤에 연기 같은 안개가 사방에 꽉 끼었으며 지붕과 밭, 잎사귀에도 누렇고 허연 먼지가 덮였다. 쓸면 먼지가 되었고, 흔들면 날아 흩어졌다”라고 당시의 모습을 표현했다. 요즘의 황사 피해와 비슷하다. 다만 당시 사람들은 황사를 자연현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임금이나 위정자가 정치를 잘못하거나 부덕한 것에 대해 하늘이 내리는 벌로 여겼다. 임금이 하늘에 죄를 고하는 제사를 올리거나 엉뚱하게 백성들에게 근신의 의미로 금주령이 내려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황사는 중국과 몽골 남부지역에 걸친 고비사막에서 발원한 모래 먼지를 일컫는 말로 강한 바람을 타고 수 km 위의 성층권까지 도달한 뒤 가까이는 중국과 우리나라, 멀리는 미국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황사의 발원지인 사막은 강수량이 많지 않지만 아예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겨울철 사막에 내린 비나 눈은 얼어붙어 황사 발생 자체를 막아주는 훌륭한 방진 덮개가 된다. 겨울에 황사를 보기 힘든 이유다. 하지만 땅이 녹기 시작하는 4, 5월이 되면 다시 황사가 발생한다. 겨울철 사막에 눈이 많이 오거나 기온이 늦게 올라가면 황사가 더 늦고 뜸하게 찾아오고, 눈이 적게 오거나 봄이 빨리 오면 황사가 더 빨리 더 자주 찾아오게 되는 원리다.

최근 북극 지역의 빙하 면적이 우리나라 황사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 나와 흥미를 끈다. 지난 수십 년간 북극에서 봄철 빙하 면적이 줄어들 때마다 황사 발생 횟수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빙하 감소가 빨라진다면 우리나라의 황사는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겨울이 짧아지면 사막에 내린 눈이 빨리 녹거나 비로 변하고, 그럼 모래 먼지를 막아줄 천연 방진 덮개가 사라진다는 논리다.

올 초만 해도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었지만 지난달부터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 4, 5월은 황사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지만 올해는 4월 이후 아직 한 차례도 관측되지 않았다. 황사가 진짜 없어진 것일까. 한국에 황사가 나타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몽골이나 중국 북부 등 황사 발원지에서 먼지를 공기 중으로 띄우는 강한 상승 기류가 발생해야 하고, 두 번째는 고비사막에서 발생한 황사가 기류를 타고 국내까지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지난달 중국 현지에서는 고농도 황사가 수차례 발생해 주민들을 괴롭혔지만 국내에서는 북서풍이 아닌 서풍이 주로 불어준 덕분에 맑은 하늘을 누릴 수 있었다. 결국 황사가 사라진 비밀은 중국에서 황사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반도 기류 덕분에 황사가 한국으로 날아오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황사 없는 맑은 하늘을 만끽하면서도 방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누리는 맑은 하늘이 태풍의 눈이고 이후 지구온난화가 변화시킨 새로운 황사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이사·기상산업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