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금리, 성장률보다 낮으면 활용가능 한국은 ‘카드’ 쓸 여지 많은 것 세계가 알아 민간의 노후대비 안전자산 수요도 충족 남발해 금리 급등하는 일은 피해야 하지만 국채 순기능에도 관심 가지며 균형 찾을 때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바나나를 생산하는 경제를 예로 들어보자. 고령화 때문에 20년 후면 노인들에게 엄청난 양의 바나나를 지급해야 한다. 그럼 지금 바나나를 먹지 말고 곳간에 쌓아둬야 하나. 명분상으론 그렇다. 그러나 곳간 속 바나나는 썩어갈 것이고, 가난한 이들은 굶을 것이며,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일해 생산이 늘어도 늘어난 부분은 모두 곳간의 썩은 바나나 교체에 사용돼 먹을 것은 별로 없다. 이렇게 20년이 흐르면 일할 사람도, 노인들 먹을 것도 줄어든다.
바나나가 썩는 것을 본 사람들은 이제 곳간 바나나를 이용해 바나나 생산기계, 즉 자본을 만들어 축적할 것이다. 자본도 낡아가겠지만 당장 생산에 투입돼 생산량을 늘린다. 늘어난 생산물로 낡은 기계를 수리하고 더 많은 기계를 만들고 먹을 것도 늘릴 수 있다면 20년 후 문제없이 노인들을 부양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정부는 곳간의 바나나가 자본축적으로 잘 연결되게 도와주면 된다.
이때 증세가 부담되면 정부는 국채를 주고 자원을 빌려야 한다. 다행히 과잉 저축 상황에선 금리가 성장률보다 낮아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고도 빚을 더 쓸 수 있다. 국가의 부채 비율, 즉 국민소득 대비 국채 비율을 생각해 보자. 빚이 느는 속도는 금리다. 반면 소득이 느는 속도는 성장률이다. 빚이 느는 속도가 소득이 느는 속도보다도 느리면 빚을 계속 돌려막기 해도 부채 비율은 낮아진다. 빚을 더 쓸 여지는 커진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피터 다이아몬드는 금리가 성장률보다 낮은 상황에서 모든 세대가 허리띠를 졸라매며 과잉 자본축적에 매달리는 것을 ‘동태적 비효율성’이라고 했다. 재정을 잘 쓰면 모두 추가 비용 없이 행복해질 수 있는데도 조율 실패로 함께 고생하는 것이다. 올해 초 올리비에 블랑샤르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미국경제학회 연설에서 국채금리가 성장률보다 낮으면 국채 활용 여지가 많다는 점을 상기시켜 크게 주목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한국의 국채금리는 1.7%대이고 세후로 따지면 더 낮다. 반면 명목성장률은 연간 실질성장률 2%대에 물가상승률 예상치 1%대만 더해도 3%가 넘는다. 한국이 국채를 쓸 여지가 많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국채는 안전자산이므로 민간의 노후 대비 자산수요를 충족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국가가 안전자산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 노후 대비 자원은 결국 부동산으로 흐른다. 국채 대신 가계부채를 늘게 하고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것이 미래 세대를 배려한 노후 대비는 아니다.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자 10달러 지폐 얼굴 주인공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국채는 과도하지만 않으면 나라의 축복이 될 것이다. 국가 통합의 강력한 시멘트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과도하지 않게’ 하는 데 주력하는 바람에 국채의 순기능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이제 균형을 찾을 때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