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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의 실록한의학]〈75〉경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트라우마

입력 | 2019-05-13 03:00: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조선의 최고 권력자는 어머니였다. 실제 광기로 권좌에서 내쫓겼거나 병약했던 임금 중에는 어머니를 일찍 잃고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된 이들이 적지 않다. 단종, 인종, 연산군, 광해군, 경종 등이 그랬다. 특히 경종은 어린 시절 어머니(장희빈)의 죽음을 직접 목도한 유일한 왕이었다. 작은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만 큰 수술 자국은 몸에 상처를 남긴다. 정신적 아픔도 너무 크면 큰 상처를 남긴다. 우리가 흔히 ‘트라우마’로 부르는 바로 그것. 경종은 한평생을 트라우마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렸다.

실록은 어머니의 비극적 죽음이 경종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숙종실록 27년 10월 1일 장희빈의 죽음과 관련해 공조 판서 엄집(嚴緝)은 상소한다. “왕세자가 이제 막 망극한 슬픔을 당하고 또 비상한 변고를 만났는데 어머니의 목숨을 구하려 해도 변명할 말이 없고 은혜로 용서해 주기를 빌고자 해도 왕명이 지엄한지라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니 정리가 궁박하여 답답한 심사가 병이 됩니다.”

경종은 이후 이름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렸다. “내가 이상한 병이 있어 10여 년 이래로 조금도 회복될 기약이 없다(경종 1년 10월 10일).” “상(경종)이 동궁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에 싸여 마침내 형용하기 어려운 질병을 앓았고 해를 지낼수록 고질이 되었으며 더운 열기가 위로 올라와서 때로는 혼미한 증상도 있었다. 곤담환, 우황육일산 등의 처방을 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경종 4년 8월 2일).”

실록이 말하는 경종의 ‘이상한 병’, ‘형용하기 어려운 질병’은 과연 무엇일까? 경종이 복용한 약물 곤담환과 가미조중탕의 공통적 치료 목표는 전간(癲癎), 즉 간질의 치료다. 인현왕후의 둘째 오빠 민진원이 쓴 ‘단암만록’에는 경종의 기행이 기록돼 있다. “숙종 승하 시 울지를 않고 까닭 없이 웃으며, 툭하면 오줌을 싸고 머리를 빗지 않아 머리카락에 때가 가득 끼어 있었다.”

많은 호사가들은 경종의 죽음을 두고 “건강한 경종을 상극의 음식인 게장과 생감으로 독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록을 살펴보면 경종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병과가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돼 있어 근거 없는 음모설임을 알 수 있다. “시평탕을 계속 복용하자 수라가 줄어들고 머리에 통증이 있었다(경종 4년 4월).” “밥맛이 거의 없고 변이 묽고 설사가 지속된다(경종 4년 8월 7일).” “침실에서 진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할 정도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경종 4년 8월 10일).”

경종은 이날 이후 밥을 먹지 못해 약 복용을 중단했다가 사흘 후인 13일이 되어서야 재개한다. 일주일 후인 20일에 이르러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동변(어린아이 소변)을 복용하고 생강차를 마신 후 게장과 생감을 먹었는데, 이후 설사 증상이 심해졌다. 홍합탕으로 치료를 했지만 무위로 끝나고 결국 25일 경종은 세상을 떠났다.

게장과 생감, 두 상극 음식을 이용한 ‘경종 독살설’은 일견 그럴싸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의 죽음은 어머니의 충격적 죽음이 몸과 마음에 새겨 놓은 깊은 상처 때문이었다. 심신의 근간이 완성되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존재는 어쩌면 한 사람의 건강한 삶과 수명을 결정짓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