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읽는 경제교실]
A.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트위터 등에 쏟아내고 있습니다. 또 이런 대통령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대응하는 파월 의장의 모습이 국내외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간섭의 날(interference day)’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냈습니다. 이 기사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위협받는 상황을 다루면서 저금리 기조를 원하는 정치인의 포퓰리즘을 지적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참석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그룹의 춘계 회의에서도 정치인의 연준 흔들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대놓고 비난하고 있지만 파월 의장은 꿈쩍하지 않습니다. 파월 의장은 “연준은 정치적 압력에 반응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정치적 고려 사항에 대해 생각하지도, 논의하지도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연준은 의회로부터 국민을 대신해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중요한 책무를 부여받았으며, 연준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중앙은행은 대통령과 어떤 관계에 있기에 이런 갈등이 일어나는 걸까요? 중앙은행은 비록 그 장(長)의 임명은 대통령이 하지만, 대통령의 직접 통제를 받는 일반 행정부처와는 달리 임명된 이후에는 업무의 독립성이 철저히 보장돼야 하는 기관입니다. 미국의 작가 윌 로저스는 태초 이래 인류의 세 가지 위대한 발명품으로 불, 바퀴, 그리고 중앙은행을 꼽기도 했는데요. 현대적 의미의 중앙은행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 독립기관이 됨으로써 제구실을 하게 됐습니다. 중앙은행의 모범으로 인정받는 미 연준도 1913년에야 창설됐습니다. 오늘날 각국이 대통령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된 중앙은행에 통화정책을 맡기게 된 것은 통화정책이 중립성과 자주성이 요구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오랜 경험을 통해 확인돼온 역사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경우 중앙은행과 같은 독립기관의 개념은 1935년 미 연방대법원 판례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기에 추진한 뉴딜정책에 비협조적이었던 미국의 독립 독점규제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 험프리 의장을 해임하려고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사건은 시작됐습니다. “귀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정책에서 서로 맞지 않는다고 느끼며, 솔직히 (귀하가 사임해) 내가 완전한 확신을 갖는 것이 국민을 위한 최선이라 생각하오.” 법률은 의장이 무능력하거나 직무태만, 업무배임 등의 경우에만 임기 중에 해임할 수 있도록 했는데 대통령은 그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들어 해임하려 한 것이죠. 의장은 대통령의 편지에도 사임을 거절했고 법정 다툼까지 간 끝에 연방대법원은 법률이 정한 사유가 아니면 의장을 해임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대통령이 독립기관의 기관장을 해임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죠.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이런 비유도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의 영웅 율리시스는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가는 길에 요정 사이렌이 사는 섬을 지나게 됩니다. 이전의 수많은 항해자들이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래에 홀려 바다에 빠지거나 배가 난파됐었는데 이를 알고 있던 율리시스는 자기 몸을 배의 돛대에 묶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이렌의 유혹을 견뎌내고 섬을 무사히 통과하죠. 흔히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항해자로 비유되는 중앙은행도 자신을 주어진 책무에 묶어둠으로써 외부 압력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조홍균 한국은행 경제교육실 부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