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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극히’ ‘현저히’… 고무줄 잣대에 맡겨진 산업현장 작업중지

입력 | 2019-05-14 00:00:00


올 6월부터 적용될 새 산업안전보건법은 중대 재해가 발생한 동일한 작업장에서 재해가 다시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작업중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정해 놓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이 조항을 근거로 최근 지방부서에 시달한 행정지침에는 ‘사업장의 안전 관리가 극히 불량하여 유해·위험이 현저히 증가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감독관이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급박한 위험’도 모호하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재계의 요구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감독관 개인이 ‘극히’ ‘현저히’의 수준을 판단해 중대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지침이다. 사업장마다 환경이 달라 일률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도 지나친 재량권을 부여한 과잉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산안법은 ‘중대 재해가 발생한 작업과 동일한 작업’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고 있는데 현장 지침에는 ‘작업 단위’가 아닌 ‘공정 단위’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여러 작업장이 하나의 컨베이어벨트로 연결된 공정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재해가 발생할 우려가 없는 다른 작업장도 멈춰야 하고, 사업장 전체의 활동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재해 재발 방지를 위해 충분한 범위와 기간 동안 작업을 중단하고 철저히 점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감독관 책임 회피용으로 필요 이상으로 공장부터 세우자는 식이 될 소지는 없애야 한다. 수많은 정밀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대형 제조업 공장 가동이 갑자기 멈추면 피해액이 하루에만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를 수 있다.

산업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럴수록 더욱 현장 지침부터 공무원의 주관적인 판단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기업과 근로자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그 기준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