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미래다] <11> 제주항공 기장들 ‘친환경 운항’
지난달 23일 서울 강서구 제주항공 회의실에 모인 서영주, 황상영, 이정광, 주정목, 백승길 기장(왼쪽부터). 이들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운항 방법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제주항공 조종사들의 자발적 캠페인인 ‘북극곰 살리기 프로젝트’를 이끄는 주역들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김포공항 화물청사에 위치한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 캡슐 모양의 ‘시뮬레이터’로 들어가니 실제 조종석과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조종사들이 비행훈련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다. 조종석에 앉은 제주항공 백승길 기장(48)과 주정목 기장(49)이 이륙 모드로 운항을 시작하자 실제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뜨는 느낌이 들었다.
조종 경력만 20년이 훌쩍 넘는 이들의 이날 비행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조금이라도 연료 사용량을 줄여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기 위한 ‘친환경 운항법’을 공유하는 비행이었다. 이들은 탄소저감 운항방법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제주항공 조종사들의 모임인 ‘북극곰 살리기 프로젝트’ 회원이다.
○ 기장들의 친환경 운항 모임 결성
항공훈련센터에서 주 기장과 백 기장이 선보인 ‘플랩스 1 테이크오프’도 대표적인 탄소저감 운항방법으로 꼽힌다. 플랩스는 비행기의 양력(날아오르는 힘)을 높여주는 장치다.
주 기장은 “보통 조종사들이 이륙할 때 많이 쓰는 ‘플랩스 5’보다 얕은 각도인 ‘플랩스 1’을 사용하면 항력(항공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방해하는 힘)이 줄어 이륙할 때 소모되는 연료량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플랩스 1 테이크오프를 한 차례 시도할 때마다 연료는 30kg 덜 쓰고, 탄소배출량은 95kg 줄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사실 연료 절감을 외치지 않는 항공사는 없다. 이는 곧 비용 절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항공업계는 운항의 안전성, 정시성, 쾌적성, 경제성 등 4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승객들이 안전하게, 정확한 시간에 맞춰, 쾌적한 비행을 하도록 하고 민간항공사로서 연료 절감 운항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황 기장이 2014년 운항 효율을 위한 일종의 태스크포스(TF) 리더를 맡았을 때에는 경제성에 초점을 맞춰 운항방법을 연구하고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조종사마다 고유의 운항 패턴이 있는데, ‘비용 절감’은 조종사들의 운항 습관을 바꾸게 하는 동기 부여로 부족했다.
그는 “연료 절감은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적 가치와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사회적 가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며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는데 차라리 탄소배출 저감에 초점을 맞추고, 아낀 비용은 우리 사회를 위해 기부하는 것은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습관의 변화가 널리 퍼졌으면”
그는 “조종 습관의 변화가 실생활도 바꿨다. 예전에는 마트 갈 때에도 자동차를 탔지만 이제는 반경 5km 거리 정도는 자전거를 탄다”며 웃었다. 황 기장은 “우리가 습관을 바꾸면 국가, 나아가 세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항공사, 또 관제사 등 항공 관계자들과도 탄소저감 운항법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 기내 종이컵-냅킨도 친환경소재로… ‘그린 크루’ 캠페인 ▼
일회용 종이컵-플라스틱컵 안쓰게 임직원에 텀블러 선물해 사용 권고
“저도 ‘그린 크루’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유하영 제주항공 운항본부 운항품질팀 운항품질심사관리담당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유 담당은 제주항공 조종사들의 자발적인 탄소저감 캠페인인 ‘북극곰 살리기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유 담당은 “특별히 ‘홍보활동’을 하지 않는 기간에도 연락처를 찾아 탄소저감 운항에 자원하고 싶다는 조종사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2017년 기장들이 주축이 돼 만든 북극곰 살리기 프로젝트는 최근 전사적인 환경보호 캠페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탄소저감 운항 모임에 자원하는 조종사가 늘면서 다른 임직원들도 ‘그린 크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제주항공은 모든 임직원이 그린 크루가 될 수 있도록 올해 1월부터 북극곰 살리기 프로젝트 이름으로 다양한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또 탑승객이 텀블러를 이용해 객실 내 에어카페 커피를 주문하면 1000원을 할인해 준다. 제주항공 사내 카페인 ‘모두락’에서도 차가운 음료 판매에 사용하던 플라스틱 사용을 중단했다. 2월에는 임직원들에게 텀블러를 선물해 일회용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 사용을 자제하는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일회용 종이컵 1개를 사용할 때마다 온실가스 약 6.9g이 발생한다. 종이컵을 덜 쓰는 것만으로도 이산화탄소 저감 운동에 동참하는 셈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작은 변화를 통해 임직원, 회사, 고객 모두가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