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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위해 밥 짓고 손편지… ‘참스승의 禮’는 애정과 소통

입력 | 2019-05-14 03:00:00

[15일 스승의 날]대한민국 스승상 수상자들
실천으로 보여준 ‘진짜 선생님’




‘밥 짓는 선생님’ 조연주 교사(왼쪽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자신이 직접 밥을 지어가며 가르친 전남 조도고 학생들과 함께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손편지 선생님’으로 알려진 박경애 교사(오른쪽 사진 가운데)가 2015년 ‘스승의 날’에 졸업생들이 감사의 의미로 가져온 케이크를 든 채 웃고 있다. 조연주·박경애 교사 제공

《올해로 교사가 된 지 3년 차를 맞습니다. 임용시험 준비 시절, 교사가 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줄 알았는데…. 요즘 전 매일이 갈등과 자괴감의 연속이에요. 꿈꿨던 교사가 되기에 현실이 너무나 가혹합니다. 매 수업시간,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의 3분의 2가 책상에 엎드려 잡니다. 제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아이도 많죠. ‘내가 무섭지 않아서 그럴까’라고 고민도 했지만, 혼을 내보면 대부분 역효과만 나더군요. 학교폭력 업무, 생활기록부 작성, 수업준비 등 24시간이 부족하게 일하고 있지만 ‘좋은 선생님’이란 수식어는 제게 영영 붙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교실 풍경…. 제가 언젠가 학생들에게 ‘좋은 스승’으로 기억될 날이 올까요?(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내 아이라면 저렇게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는 걸 보고만 있을까.’

육지에서 배를 타고 40분을 가야 닿는 전남의 섬마을 조도. 그곳의 유일한 고교인 조도고에서 근무하던 조연주 교사(54·여)는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기 시작했다. 부모님 대부분이 뱃일, 밭일을 나가 도시락을 제대로 못 챙겨온 학생들이 야간 자율학습 전에 컵라면과 과자만 먹는 것을 본 후부터였다. 처음엔 간단한 김밥을 만들었지만 나중엔 아예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식재료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호주머니 속 돈을 아끼지 않았다. 섬마을 근무를 자원해 조도에 갔던 그가 훗날 ‘밥 짓는 선생님’으로 불린 이유다.

매일 ‘쌤(선생님)밥’을 먹은 아이들은 선생님과 한 팀이 됐다. 대학 진학의 길을 멀게만 생각하던 아이들이 어느덧 조 교사와 함께 뛰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의 지도 아래 개교 이래 최초로 서울대 합격생이 나왔고, 전남대 한국해양대 등 지역의 내로라하는 국립대와 교대에 붙어 떠나는 아이들이 이어졌다. 교육부와 한국교직원공제회가 매년 주관하는 ‘대한민국 스승상’에서 제1회 대상을 수상한 조 교사의 이야기다. 그는 “열악한 여건에서도 꿈을 이룬 학생들이야말로 나의 훈장”이라고 말했다.

교권 추락의 시대, 옛 고서에 나오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은 이제 신화나 다름없다. 교사의 권위가 임금이나 부모에 버금갔던 시대에는 교사라는 것 자체만으로 권위가 인정됐지만 이제는 수십 년 교직경력을 가진 교사들조차 회의감과 무력감을 호소하며 길게 명예퇴직 줄을 서는 형편이다. 이런 시대에 ‘참스승’이 되기 위한 교사의 예(禮)는 무엇일까.

지난해 대한민국 스승상 수상자이자 ‘손편지 선생님’으로 불리는, 교직생활 30년 차 박경애 교사(55·여·경기 소하중)는 첫째로 ‘애정’을 꼽는다. 그는 제자들에게 받은 수백 통의 답장 가운데 몇 년 전 ‘문제아’로 불리던 A 양(당시 13세)에게서 받았던 편지를 잊지 못한다. 온몸에 문신을 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눈도 마주치지 않던 그에게 박 씨는 평소처럼 손편지를 썼다.

어느 날 A 양의 답장엔 그가 매일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저는 엄마가 없고요. 아빠는 나를 돌봐주지 않아요.”

아이를 깨워줄 부모가 집에 없단 걸 알게 된 박 교사는 아이가 오지 않는 날이면 전화로 엄마처럼 잔소리를 했다. 그렇게 2학년을 보낸 A 양은 박 씨에게 편지를 남겼다.

“모른 체하지 않고 매일 깨워주셔서 고마웠어요. 1년 365일 자퇴하는 날만 기다렸는데 이젠 잘 살아보고 싶어요.”

잘 가르치는 것, 이를 위해 자기 계발을 계속해 나가는 것 또한 이 시대에 필요한 스승의 조건이다. 22년 차 김진성 교사(48·충북 현도정보고)는 기초가 부족한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영어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교수법’. 팝송과 영화 속 표현을 가져와 지루하지 않은 수업을 하는 게 그의 주특기다. 그는 “영어성적이 8, 9등급이었다가 3등급 이상으로 오른 학생도 많다”며 “잠자는 학생들을 깨우려면 수업이 즐거워야 한다.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은 스스로의 권위를 세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또 하나 교사들에게 강조되는 가치는 ‘소통’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지연(가명·29·여) 교사는 5년 차에 접어든 지난해부터 학생들과 학급일기를 쓰고 있다.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교사도 좋겠지만, 제자의 가슴에 남는 교사가 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애정, 실력, 소통.’ 하지만 이 모든 가치를 추구하기에 2019년 교사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을 모르는 아이들이 늘고, 학업은 이미 학원에서 더 많이 배워 오는 상황에서 교사들이 뚫고 들어갈 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서 ‘예기(禮記)’에서 스승의 예를 분석한 정병섭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전통적 개념의 스승과 제자는 24시간 동안 함께 생활하는, 학문과 인성을 둘 다 가르칠 수 있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여건이 다르다”며 “교사에게 전통적 관념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만큼 달라진 상황에 맞춰 교사의 가치가 실현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하경 whatsup@donga.com·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