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라디오 방송 20주년 맞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10일 만난 황덕호 재즈평론가는 “꼬마 때 카펜터스를 들으면서도 노래 대신 기타와 플루트 솔로만 기다렸다. 재즈는 운명이었나 보다”며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의 순댓국과 미국 뉴욕의 재즈가 이렇게 연결된다. 국내 대표적 재즈평론가 황덕호 씨(54)의 칼럼, ‘덱스터 고든, 그리고 순댓국’의 일부. 황 씨의 치밀하며 구수한 글을 읽고 나면 어느 날 펄펄 끓는 순댓국을 보고 미국 색소폰 연주자 덱스터 고든(1923∼1990)의 ‘Autumn in New York’이 생각날지 모를 일이다. 임창정의 ‘소주 한 잔’ 대신 말이다.
황 씨가 최근 재즈 칼럼집 ‘다락방 재즈’(그책·1만7000원)를 냈다. 고든과 순댓국 이야기도 여기 실렸다. 순댓국과 비밥을 연결하는 뜨끈한 글맛만으로 승부하는 책은 아니다. ‘이 깊은 침묵의 음악(독일 음반사 ECM의 음악)은 정말 당신 귀에 들릴 것인가?’ ‘우리는 정말 재즈를 좋아하는 걸까’라는 도발적 질문들은 서릿발처럼 차갑다. 치열한 감상보다 막연한 분위기로 재즈를 소비하는 세태에 던지는 의문이다.
“어떻게 왔나 모르겠어요. 아직도 제가 말주변이 참 없거든요. 초기엔 어땠겠습니까. 말과 말 사이에 뜸 들이는 ‘어…’를 하도 많이 넣으니까 원고 위에 빨간 펜으로 ‘어’라 써둔 적도 있어요. 자신을 향한 경고였죠(웃음).”
경고가 약효를 본 걸까. 지난해부터는 ‘황덕호의 Jazz Loft’라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해 운영한다. 다양한 음악가와 음반을 카메라 앞에서 직접 소개한다. ‘Loft’도 다락방이라는 뜻. 황 씨는 오랫동안 서울 용산구 후암동 자택의 다락방에서 글을 썼다. 3월 인천으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그는 ‘다락방 정신’으로 쓰고 말한다.
“1970년대 미국 뉴욕 음악계에 ‘로프트 재즈’라는 물결이 있었어요. 돈 안 되는 전위 재즈를 하던 음악가들이 임대료 싼 꽃 도매시장 건물의 다락방에 둥지를 틀면서 시작됐죠.”
황 씨는 스마트 시대, 재즈의 입지가 다락방보다 좁아진 컴퓨터 세상에서 재즈의 가치를 믿는다.
“재즈는 순간순간 상대방의 연주에 반응하는 교감이 핵심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 말이에요. 이거야말로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 아닌가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