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2014년부터 재활용품을 팔아서 모은 돈에다 자신의 생활비 일부를 더해 매달 30만 원씩 1600여만 원을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내놨다. 그는 젊어서 술에 의지해 살다가 최귀동 할아버지의 삶을 알고 난 뒤 지난날의 삶을 반성하고 최 할아버지의 삶을 닮기 위해 폐휴지 등을 모으기 시작했다. 김 씨는 “이웃을 위해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내 삶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개막하는 제20회 음성품바축제 때 봉사대상 상패와 상금 500만 원이 김 씨에게 주어진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음성군 금왕읍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강제 징용됐다가 병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와 무극천 다리 밑에서 걸인 생활을 했다. 자신도 불편한 몸이지만 밥 동냥을 해 병든 걸인들을 먹여 살렸다. 1976년 음성군 금왕읍 무극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오웅진 신부는 최 할아버지를 만나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고 당시 가지고 있던 돈 1300원으로 무극리 용담산 기슭에 방 다섯 칸짜리 ‘사랑의 집’을 지어 이들을 입주시켰다. 이곳이 현재의 꽃동네 시초였다. ‘작은 예수’, ‘거지 성자’로 불린 최 할아버지는 1986년 2월 한국가톨릭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