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한 고성수도원 유덕현 신부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의 유덕현 초대 아빠스는 13일 수도원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찾고 위로 올라가는 것만 바라기 쉽지만 평범하고 단순한 삶 속에서도 사랑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며 “우리는 모두 한 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성=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아빠스는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로 베네딕토 계열 수도회의 대수도원장을 일컫는다. 사제 서품 권한만 없을 뿐 주교에 준하는 권한을 갖는다. 유 아빠스를 13일 경남 고성군 대가면 수도원에서 만났다.
“옛 은수자(세속을 떠난 수도자)들은 동굴에서 혼자 살았고, 사막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사막은 하느님을 만나는 고독의 장소입니다. 침묵하는 시간은 사막 대신 고독의 장소가 됩니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 총원에서 올해 3월 열린 유덕현 아빠스(왼쪽) 축복 예식. 가운데가 디에고 마리아 로사 총아빠스다. 고성수도원 제공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삽니다. 매일 하느님께 의탁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묵상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우리의 소박한 삶이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가 됩니다.”
수도원에 신부와 수사 등 30명이 하루 기도 7번, 미사 1번, 성경 읽는 시간 2번, 오후 노동의 일과를 되풀이한다. 양봉, 액체 비누 제조와 함께 이탈리아의 연합회 총원에서 수입한 포도주와 올리브를 팔기도 한다.
“이런 생활이 쉽지 않거든요. 내 존재도 없는 거 같고…. 고요해 보여도 내적으로는 이기적이고 헛된 생각을 물리쳐야 하니 영적 투쟁이 많지요.”
유 아빠스의 사목 표어는 ‘TOTUS TUUS’(온전히 당신의 것). 신부가 아니었다면 장군이 됐을지도 모른다. 1986년 유 아빠스는 화학공학을 전공한 학군단(ROTC) 출신으로 군수사령부에서 미사일을 담당하는 전도유망한 대위였다. 국방부가 무기 체계를 공부해 오라며 유학을 권유해 준비하던 중에 “하느님이 나를 이끄시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부자는 더 큰 부자와 비교해서 불행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해 불행합니다.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습니다. 멀리서 찾지 마세요. 가족과 더 자주 밥 먹고 대화하고, 친구들과 함께하세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 눈 앞의 사람을 사랑하세요.”
고성=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