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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에 밀린 ‘K패션 메카’ 동대문

입력 | 2019-05-16 03:00:00

5년전 동대문 따라하던 광저우, 이젠 한국 보따리상이 中찾아가
동대문 3만곳중 5000곳 빈 점포… ‘쫓는 中, 쫓기는 한국산업’ 압축판
전문가 “차별화된 혁신전략 절실”




빈 가게 느는 동대문 15일 오후 서울 동대문 쇼핑몰 밀리오레. ‘입점 문의’ 문구가 붙은 점포가 여러 개 눈에 띈다. 현지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밀리오레 내 총 2500개 점포 중 600개가량이 공실일 정도로 중국 광저우 시장에 손님을 뺏긴 도소매 업체들의 매출 하락이 심각한 상황이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온라인 의류 쇼핑몰 A사의 김모 대표는 올 초 중국 광저우(廣州)에 중국인으로 구성된 팀을 짜서 사무실을 차렸다. 중국인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면 모델 피팅을 거쳐 중국 내 생산 공장에 발주를 넣는다. 김 대표는 “옷을 100벌 이상 발주하면 관세 및 부가세를 감안해도 한국보다 30% 이상 생산원가가 낮다”면서 “불과 5년 전만 해도 중국인들이 동대문에서 물량을 확보하려 애썼지만 이젠 상황이 역전됐다. 광저우를 찾는 ‘한국인 보따리상’이 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광저우 패션 클러스터에 밀려 ‘K패션 메카’인 동대문 클러스터가 붕괴되고 있다. 장사가 되지 않아 매장을 정리한 도소매업자가 늘면서 동대문 일대 3만 개 점포 중 5000여 개의 공실이 생겼다. 동대문 못지않은 원단과 디자인 수준을 갖춘 광저우 시장이 저렴한 제조 원가와 대량 생산을 무기로 중국 도매상뿐만 아니라 국내 패션 사업자의 생산 주문을 무섭게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가 4월부터 밀리오레, 두타 등 동대문 일대 상가 건물 32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패션 도소매 점포 3만여 곳 중 빈 점포가 50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동대문 일대 상가의 빈 점포 수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중현 협의회 회장은 “상황이 너무 심각해 동대문시장 지원책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처음으로 실태 조사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붐비는 광저우 패션타운 중국 광저우 의류도매시장 ‘사허 진마(沙河金馬)’의 모습. 상가를 찾은 손님들로 시장이 붐비고 있다. 이스트엔드 제공

14일 방문한 동대문 일대 상가는 ‘공사 중인 건물’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빈 점포가 많았다. 대표 소매 쇼핑몰인 밀리오레는 핵심층인 지하 1층∼지상 3층 곳곳에 ‘입점 문의’ 안내가 붙어 있었다. 밀리오레 내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2500개 점포 중 600개가 비어 있다”면서 “호황기 월 500만 원이던 1층 임대료가 10분의 1 수준인 50만∼60만 원으로 떨어졌고 3층 이상은 월세 없이 관리비만 내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K패션 메카였던 동대문이 빠르게 쇠락하고 있는 반면 광저우는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아시아 패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광저우엔 스싼항(十三行), 잔시루(站西路), 중산바루(中山八路) 등 각각의 규모가 동대문시장(58만6000m²)에 버금가는 의류 도매 및 원자재 시장이 10개 이상 포진해 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동대문시장의 붕괴는 단순히 섬유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산업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격하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며 “차별화된 산업 혁신이 없을 경우 업종 전환이 어려운 섬유산업 종사자들의 도산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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