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배출 정당, 공안검사 대표가 감히 촛불정부에다 독재 운운한다고? ‘좌파독재’를 막말로 보는 청와대, 표현과 양심의 자유 중대한 침해 선거법까지 고쳐 장기집권 꾀할 텐가
김순덕 대기자
13일 청와대 분위기를 복기해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은 야권을 겨냥해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낡은 이념의 잣대는 버려야 한다”고 작심 비판했다. 지난주 대담 때 한국당이 ‘독재자’라고 한다는 데 대한 느낌을 질문 받고는 “촛불 민심에 의해 탄생한 정부가 독재, 그것도 그냥 독재라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색깔론을 더해서 좌파독재라고 규정짓고 추정한다는 것은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넘어갔던 답변을 주말 숙성을 거쳐 제대로 한 것이다.
같은 날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도 냉전시대의 낡은 사고와 색깔론, 좌파 우파 타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나경원이 이미 사과한 달○ 같은 단어는 이념과 거리가 멀다. 즉 청와대는 여성지지층 모욕 때문이 아니라 ‘좌파독재’라는 막말을 더는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다.
청와대는 이참에 좌파라는 단어 자체를 없애버릴 듯이 낡은 이념, 낡은 사고라며 쌍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그렇지 않다. 미국 포린어페어스지에서 이데올로기와 좌파를 검색하면 2017년이 가장 많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는 지난해 서유럽 8개국을 조사해 “유권자의 이데올로기가 정당과 정책 선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까지 내놨다.
좌파는 경제와 사회정책에서 정부의 더 많은 역할을 중시한다는 보고서가 맞는다면 한국의 집권세력은 명백한 좌파다. 운동하느라 공부를 안 해선지 규제개혁을 대기업 봐주기로만 아는 낡은 좌파일 뿐이다. 유럽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이민자 문제는 우리의 북한 문제와 비슷하다. 유럽의 좌파가 친(親)이민자 성향이듯 이 땅에선 좌파가 친북 성향이고, 정부는 북한에 두 팔 벌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좌파를 좌파라 부르지 못하고 꼭 ‘진보’라고 말해야 한다면 표현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공인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이념을 지녔는지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돼야 한다고 대법원은 2002년 판결한 바 있다. 미국 30대 안팎의 ‘밀레니얼 사회주의자’ 사이에선 사회주의가 힙하고 쿨한 이념으로 뜨고 있다니 국내 좌파도 유권자가 알고 찍도록 당당하게 커밍아웃해 주기 바란다.
‘독재’ 표현을 놓고도 신주류 일각에선 격앙된 분위기다. 독재자 대통령을 줄줄이 배출한 한국당이, 더구나 공안검사 출신 황교안 대표가 어디 감히 촛불정부에다 독재 운운하느냐며 충성 경쟁을 하는 것 같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독재정권의 적폐 뺨치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이는 데는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잃을 판이다.
2년 전 문 대통령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라고 취임선서를 했다. 평화적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지만 지금은 통일보다 경제가 먼저라는 게 통일연구원의 최근 의식조사 결과다. 대통령이 자유와 복리 증진을 못할 경우 투표로 심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오늘의 사태를 예견한 듯 국민의 복리보다 자유를 앞에 둔 우리 헌법의 혜안에 고개가 숙여진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