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이 중국에서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선 악록(岳麓)서원 등 4대 서원이 유명했고, 청나라 때는 7000여 곳에 달하는 서원이 번창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중국 서원은 단 한 곳도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지 못했다. 중국 서원은 관료 양성을 위한 ‘고시원’ 기능에 치우쳤고, 시대에 따라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등으로 학풍이 바뀌며 일관성을 유지해오지 못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반면 한국의 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예(禮)를 꾸준히 실천하고 존속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 조선 후기 서원이 토호 세력의 이권 수탈의 장이자, 특정 가문을 지키는 사적 용도로 쓰이는 등 병폐도 적지 않았지만 도덕군자를 함양한다는 본래의 기능은 유지돼 온 게 사실이다.
▷한국의 서원은 건축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탁월한 사례’라는 점도 부각됐다. 서원 건립에 앞장섰던 퇴계 이황은 “서원은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리 산천경개가 수려하고 한적한 곳에 있어 환경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만큼 교육적 성과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의 서원들은 대개 이 원칙 아래 건립됐으며, 건물 입지도 특징을 지닌다. 학문 탐구에 비중을 두는 강학 중심의 서원은 핵심적인 명당 혈처(穴處)에 교육을 하는 강당(講堂)을 배치한 반면, 제향(祭享)을 중시하는 서원은 사당(祠堂)을 핵심 길지에 배치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원이 자리한 곳의 앞산과 뒷산이 열린 공간으로 확장돼 사람들과 교감한다는 자연관 등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밝혔다.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