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있어도 못 쓰는 환자들 중증 천식-아토피-루푸스 환자, 부작용 위험 큰 스테로이드로 치료 신약 비용 부담 줄여줄 ‘위험분담제’… 목숨 위급한 병 아니면 적용 안돼 “환자 고통 덜어줄 방안 찾아야”
중증 천식 환자인 정동일 씨는 증상 완화를 위해 매일 흡입용 스테로이드와 함께 20가지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왼쪽 사진). 루푸스 환자인 김진혜 씨도 매일 15종류의 약을 복용한다. 부작용이 큰 약을 매일 먹는 건 중증 질환자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이다. 채널A 영상 캡처
○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중증 질환자들의 고통
체육대학 출신인 정 씨는 학창시절 역도 선수를 할 만큼 건강했다. 하지만 10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고 대상포진을 앓은 뒤 나타난 천식 증상은 열흘 만에 급속히 악화됐다. ‘상세 불명의 중증 천식.’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내려진 최종 진단명이다.
완치가 어려운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도 매 순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한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는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매일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것 같다’며 천형(天刑)과 같은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의 삶의 질은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만큼이나 낮다.
○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신약만 기다리는 환자들
희귀난치성 질환인 루푸스 환자들도 평생 약으로 증상을 다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루푸스는 전신에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자가면역 질환으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합병증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 협회’ 회장이자 자신도 루푸스 환자인 김진혜 씨(42·여)는 3월 루푸스 합병증인 말초혈관 장애가 생겨 왼쪽 손목에 정상 혈관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한 지 1개월 반이 지났지만 그의 왼손 끝은 멍이 든 것처럼 시퍼렜다. 김 씨는 “루푸스 환자들이 합병증으로 몸이 서서히 망가지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 당장 죽지 않는다고 약값 경감 제도 배제
이렇다 보니 중증 질환자들은 부작용이 덜한 신약을 쓸 수 있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2013년 루푸스 신약인 ‘벤리스타’가 국내 허가를 받았다. 이 약은 50년 만에 새로 나온 약이다. 2016, 2017년에는 중증 천식 신약인 ‘누칼라’와 ‘싱케어’가 국내에 들어왔다. 지난해 8월에는 20년 만에 나온 중증 아토피 피부염 신약인 ‘듀피젠트’가 국내에 출시됐다.
이 네 개의 약은 모두 기존 치료제보다 부작용이 덜하면서 치료 효과는 뛰어나다. 하지만 현재 이 신약을 쓰는 환자는 극소수다. 주사제인 신약을 맞으려면 회당 100만∼200만 원, 연간 2000만 원가량이 들기 때문이다. 이 신약들은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는 비싼 신약이 꼭 필요한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위험분담제’를 시행하고 있다. 고가 신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되 해당 제약사가 수익의 일부를 환급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나눠 지는 제도다. 하지만 그 적용 대상은 기대 여명이 2년 미만인 질환으로 제한돼 있다. 죽음에 비견될 만큼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중증 질환자들은 당장 치료하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김호경 kimhk@donga.com·공태현 채널A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