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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찬 수형자는 시한폭탄… 복귀 프로그램 실효성 키워야”

입력 | 2019-05-16 03:00:00

숭실대 ‘교정복지론’ 강좌 계기 꾸준한 만남 박삼중 스님-송광수 前검찰총장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만난 송광수 전 검찰총장(왼쪽), 박삼중 스님(가운데), 배임호 숭실대 교수. 2007년 기독교 대학인 숭실대에서 배 교수의 교정복지론 강의에 강사로 나선 가톨릭 신자 송 전 총장과 박삼중 스님은 이후 10여 년간 끈끈한 사제 모임을 이어왔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큼지막한 십자가가 걸린 커다란 강단 앞에 법복을 입은 스님이 섰다. 이곳은 국내 대표적인 기독교 대학인 숭실대의 한경직 목사 기념관. 2007년 숭실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배임호 교수의 ‘교정복지론’ 수업이 열렸던 곳으로, 매주 이색적인 강사들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사형수의 대부로 불리는 박삼중 스님과 가톨릭 신자이자 수많은 범죄자를 직접 감옥에 넣었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다.

기독교 대학에서 맺어진 독특한 스승과 제자들은 10여 년간 스승의 날이면 사제 모임을 가졌다.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14일 만난 박삼중 스님, 송 전 총장, 배 교수는 “스승에는 종교도, 위치도, 나이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인연 한가운데는 사형수였던 A 씨가 있다. 20대에 한순간의 오판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모범적인 복무 생활을 거치고 난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8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교정복지 사례 연구를 하던 배 교수는 “이론에 치우친 교정복지 수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사형수 출신 A 씨를 강사로 초빙했다. 이어 사형수의 교정에 가장 헌신하는 박삼중 스님과 법조인으로 교정 현장을 지켜본 송 전 총장까지 모셔오면서 전무후무한 교정복지 강의가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박삼중 스님은 자신이 늘 몸에 지니고 있는 염주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교정과 스승의 의미를 알려줬다. 스님은 “염주 2개를 항상 차고 다니는데 이 중에 하나는 1989년 사형을 당한 고금석이 준 염주”라며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사람 4명을 죽인 그는 감옥에 들어오기 전 짐승과도 같은 삶을 살았지만 감옥에서 보낸 3년만큼은 부처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치금을 모두 불우한 재소자 가족에게 나눠주고, 모기로 들끓는 감옥 안에서 웃통을 일부러 벗고 피를 뜯어가라고 하기도 했다”며 “신분은 비록 사형수였지만 지금도 내게는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송 전 총장은 30년 넘게 수사 현장에서 범죄자들을 단죄하며 살아왔다. 그가 사형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대 초 사형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2과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박삼중 스님을 만나면서부터다. 송 전 총장은 “당시만 하더라도 1년에 8, 9명씩 사형 집행이 이뤄지던 때였는데 스님이 찾아와 사형수들의 안타까운 가족사 등을 알려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며 “사제 모임을 함께하는 제자들이 교정복지 전문가로 성장할 때마다 뿌듯함과 즐거움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강력히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열악한 교도소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소식에는 “범죄자에게 무슨 인권이 있냐”며 힐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송 전 총장은 “국민의 법감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고,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처벌이 실제로 범죄 예방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수형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세밀한 교정행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삼중 스님은 “결국 사회로 돌아올 수형자들에게 분노만 키우게 한다면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을 늘리는 꼴”이라며 “범죄자를 만드는 배경에는 사람의 본성보다 사회의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수형자들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