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호르몬’으로 남녀 구분한 스포츠…공정성 뒤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성차별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캐스터 세메냐 논란도 이런 맥락이다. 세메냐는 2012년 런던 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육상 8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근육질의 몸매, 중저음의 목소리 탓에 논란의 대상이 됐다.
세메냐는 여자지만, 선천적으로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 남성호르몬 수치는 여자가 혈액 1L당 0.12∼1.79나노몰 정도, 남자가 7.7∼29.4나노몰 수준이다. 세메냐는 7∼10나노몰로 알려졌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출전을 제한하자, 세메냐는 반발했다. 몇 년간 공방이 이어진 뒤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서 얼마 전 결론을 내렸다. 남성호르몬 수치를 5나노몰 이하로 맞춰야 여자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고 했다. CAS의 결정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우선 과학적 근거가 애매했다. CAS가 참고한 근거는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은 여자 선수의 경기력이 2% 정도 더 좋다는 육상연맹 측의 연구 결과였다. 그런데 올림픽 출전 남자 선수 중 16.5% 정도는 남성호르몬 수치가 일반 남성보다도 낮게 측정됐다는 상반된 연구 결과도 있다. 남성호르몬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메냐가 문제라면 다음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무려 23개나 딴 미국 수영스타 마이클 펠프스는 194cm의 장신인데 체형이 특이했다. 팔은 아주 길고, 다리는 아주 짧아 물의 저항을 적게 받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는 196cm의 장신인데, 다리 길이만 105cm였다. 압도적으로 긴 다리를 이용해 40여 걸음 만에 100m를 주파했다.
그런데 왜 펠프스와 볼트의 다리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었을까. “여자 선수들의 남성호르몬을 제한할 거라면, 볼트의 다리도 잘라야 한다”는 스포츠계 일부의 외침은 반향 없이 묻혔다. 문제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불공정 경쟁의 관점이 아닌, ‘남녀 차별’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남상우 박사는 “똑같이 압도적인 기록이 나왔을 때 남자 선수에겐 찬사를 보내고, 여자 선수는 ‘쟤, 남자야?’라고 삐딱하게 본다. 남성 우위 사회가 여자의 한계(범위)를 정해놓고, 그 선을 넘지 못하게 한다. 이를 ‘구조적 폭력’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구조적 폭력의 문제는 과거 여자 보디빌딩의 사례를 보면 선명하다. 여자 보디빌딩은 1970년대부터 유행을 탔고, 남자처럼 우람한 근육을 갖춘 선수들이 많아졌다. 그러자 주류 사회가 그 근육의 크기를 규제했고, 여자 대회의 금전적 후원을 끊었다. 그 결과 지금은 우람한 근육 대신 여성성을 강조하는 보디 피트니스가 대세가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스포츠계는 최근 양성 평등을 강하게 외쳐왔지만, 세메냐를 둘러싼 논란에서 여전한 남성 우위의 사고를 노출해 버렸다. 세메냐는 CAS의 결정에 불복해 이번 문제를 스위스 연방법원으로 끌고 갔다. IOC도 이제야 해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 회의체를 구성했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