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이는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평등하게 노동을 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대원칙은 동해안 돌미역 작업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곽암’, ‘짬’ 등으로 불리는 미역바위는 어촌의 공유자원이다. 미역바위를 배정 받은 어촌계원들은 관리, 채취, 건조, 판매 등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작업을 하는 공동 운명체가 된다. 울산 해안에서 채취되는 돌미역은 최상품으로 유통된다. 좋은 품질의 돌미역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 겨울에는 바닷물 속에 잠겨있는 미역바위를 대대적으로 청소한다. 농부가 땅을 갈아 농사를 짓듯 어민들도 바다를 경작한다. 울산 제전마을은 해녀 60여 명이 호미를 들고 잠수하여 갯바위를 긁어내는 작업을 10일 동안 한다. 미역바위를 긁어내는 데에 호미 수백 개가 사용된다.
갯바위를 긁어내느라 무뎌지는 날을 수시로 갈아서 해녀들에게 제공하는 주민들, 작업자에게 제공할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해녀들을 운송하는 7척의 작업선 등 모든 어촌계원이 분업하여 미역바위 청소를 돕는다. 150명에 불과한 마을에서 동원되는 인원이 100명에 달한다. 미역바위 청소에 들어가는 제반 경비가 1억 원을 넘는다. 미역바위 청소를 위해 일부 갯바위에 스킨스쿠버를 투입한 결과 60%의 경비 절감 효과가 있었다. 효율성이 높음에도 전면적으로 스킨스쿠버를 활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많은 수의 해녀가 투입될 필요가 없고,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호미 날 가는 사람, 작업에 이용되는 어선 등이 대폭 줄어든다. 어촌계원 개개인은 미역바위 청소비용을 지출하는 주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작업에 참여하여 일당을 벌어들인다. 재화가 마을 내에서 순환되어 지출한 돈이 마을 주민들에게 재분배되는 구조다.
효율성보다는 공동체 가치를 앞세운 것으로 제주도 어촌의 ‘할망바당(할머니 바다)’과 유사하다. 물질 능력이 떨어진 노인 해녀들을 위해 해안선과 가까운 바다를 할망바당으로 지정한다. 제주 해녀들은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 잡은 소라 중 크기가 작은 것을 할망바당에 뿌려 노령의 해녀들이 물질할 수 있도록 한다. 노동력이 약한 사람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우리의 어촌에는 존재하고 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