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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새 가장 심각?… 인구수-수요량 통계 왜곡 가능성

입력 | 2019-05-18 03:00:00

[위클리 리포트]북한 식량난-식량지원 팩트체크
최근 10년새 가장 심각?… 인구수-수요량 통계 왜곡 가능성




북한에 지원하는 식량이 2007년 선박에 실리는 모습. 동아일보 DB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 사업을 본격화할 방침을 밝히면서 찬반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북한이 현재 심각한 기아상태에 직면해 있는 만큼 인도적 측면에서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의 식량난이 과장됐고, 식량 지원이 “늘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북한 식량난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인구수와 수요량 통계가 왜곡됐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어 식량 지원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갈등은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북한 식량난, “정말 심각” vs “과장 가능성”

북한 식량난은 이달 3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한 ‘북한의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를 근거로 한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최근 10년 사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며, 올해 회계연도(2018년 11월∼2019년 10월) 식량 부족량은 136만 t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따라서 북한 인구의 40%인 1010만 명이 식량 부족에 처해 있으며 긴급하게 식량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FAO와 WFP 보고서가 곡물 생산량과 분배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를 북한 당국에서 받아 발표하기 때문에 북한이 통계를 조작하면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수요 규모를 좌우하는 인구수가 정확하지 않다. FAO와 WFP는 보고서에서 북한 인구를 25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2017년 조선중앙연감에서 밝힌 수치(2015년·2503만 명)와 비슷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에 의혹을 제기한다. 2008년 한국과 유엔인구기금(UNFPA)의 재정지원으로 북한이 실시한 인구센서스 결과도 불신 받았다. 당시 북한 인구는 2405만 명으로 발표됐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011년 발표한 논문 ‘2008년 북한 인구센서스의 분석과 문제점’에서 “군대 인구와 관련한 의도적 통계 왜곡의 가능성이 의심되며, 동시에 이들 통계는 기존의 인구통계와도 서로 조화될 수 없을 만큼 불일치한다”며 “현재 존재하는 북한의 모든 인구통계는 통계적 왜곡의 가능성과 불일치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본보가 단독 입수한 북한 중앙통계국 통계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인구는 2005년 2100만 명을 넘어섰다가 2009년부터 2000만 명대로 후퇴했고, 이후 계속 줄었다. 추세대로라면 현재 북한 인구는 2050만 명 정도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인구가 FAO와 WFP 추산보다 450만 명이 적다는 뜻이며, 그만큼 북한에 필요한 식량 수요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국력을 부풀리기 위해 인구수를 조작하는 것은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애용하던 방법이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이 과거 외부에 공개한 인구는 당시의 한국 인구 절반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 식량 수요, “손실 커 수요 늘어” vs “근거 불명확”

FAO, WFP 보고서는 북한이 앞으로 1년 동안 필요한 곡물 소요량을 575만 t으로 추정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북한의 곡물 소요량을 562만 t으로 잡았는데 1년 만에 13만 t을 늘려 잡은 이유로 “올해 식량 생산과 사료 소비량, 수확 후 손실 등이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고 설명했다.

반대 측은 이에 대해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또 실제 북한의 1년 식량 소비량을 추정한 것과도 다르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식량 소비량은 1인당 하루 평균 배급 목표 기준량으로 삼고 있는 500g을 기준으로 산출할 수 있다. 북한 인구가 2050만 명이면 전국적으로 매일 1만500t이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탈북자도 “북한에선 전국의 하루 배급량이 1만 t이란 말이 정석처럼 통용되고 있다”고 증언한다.

1년 365일 기준으로 할 때 북한이 배급제를 유지하려면 1년 동안 383만 t이 필요하다. 북한 인구를 2500만 명으로 높여 잡아도 456만 t이 필요하다. 여기에 식품 생산, 사료 등에 사용되는 곡물을 포함해도 북한은 1년에 500만 t만 확보하면 굶어죽을 상황까지 내몰리진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 “현장 조사 했다” vs “조사 부실했다”

FAO, WFP는 현장 조사를 위해 올해 3월 29일부터 4월 12일까지 전문가 8명을 북한에 파견했다. 이들은 북한 당국이 제공한 차량을 타고 6개의 도를 돌면서 155개 농가를 살펴보고 농민들과 농업 관계자들을 인터뷰했고, 그 결과를 보고서에 담았다.

하지만 정작 식량 가격과 거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장마당은 북한 당국의 비협조로 방문하지 못했다. 북한 농업전문가인 권태진 GS&J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이번 보고서에서 경사도가 15도 이상인 50만 ha의 농지가 빠졌는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20만 t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보고서엔 북한 개인 경작지(소토지) 생산량도 반영되지 않았다. 북한에서 농민들이 협동농장 농사보단 개인 소토지 농사에 더 열심이란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 경작지 생산량은 농민들이 정확하게 신고하지 않기 때문에 당국이 파악할 수 없다. 북한이 최근 러시아에서 지원받은 밀가루 10만 t도 누락됐고, 외부 지원과 무역, 밀수 등으로 들어가는 식량도 전부 빠졌다.

WFP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늘 식량 위기에 몰려 있다. 하지만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갓 탈북한 북한 주민을 매년 약 100명씩 8년 동안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 세 끼를 다 먹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2012년 72.4%에서 2018년 87.4%로 증가했다. 적어도 북한이 굶주림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북한 경제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다수의 학자는 FAO가 사업을 하려는 조직 특성 때문에 북한의 식량 필요를 과대평가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쌀이 부족한데도 떨어지는 북한 쌀값의 미스터리

북한의 식량난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는 장마당 쌀값이다. 하지만 최근 이 가격은 위기설과는 달리 하락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보름 주기로 북한의 쌀값과 환율 등 주요 지표들을 조사해 공개해 온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14일 현재 북한의 식량 가격은 평양 기준으로 1kg당 4180원이다. 평양의 쌀값은 지난해 12월 5000원이었고, 지난해 5월 15일엔 5100원이었다. 1년 동안 오히려 1000원이 하락한 것이다. 북한의 식량 가격은 2017년 9월에 6100원을 기록한 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통일부는 15일 이에 대해 “북한 체제 특성상 공식 가격이나 공식 기구가 아닌 (장마당) 지표를 가지고 식량 사정을 추정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많은 제한이 있다”며 “공식기구에 의한 가격이 아닌 장마당 가격에 대해 정부가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주민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시장 식량 가격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할 때에도 쌀값은 자고 나면 올랐다.

○ 식량 지원, “서둘러야” vs “신중해야”

WFP는 5∼9월이 북한의 춘궁기라며 식량 지원이 가을 추수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요청했다. 정부도 이에 화답해 9월 전까진 식량 지원을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전통적인 북한의 춘궁기 개념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릿고개로 불리는 북한의 춘궁기는 3∼5월이고, 6월 초부터 이모작 봄 작물인 밀, 보리, 감자가 나오면 식량 사정은 점점 풀린다는 설명이다.

대북 식량 지원이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북한에 식량이 지원되면 내부 쌀값이 떨어지고, 굶어죽을 걱정이 없어진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또 농민에 대한 군량미 수탈도 줄어드는 작용도 있다. 북한이 식량 지원을 받을 때 대남도발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도 기대 효과다. 햇볕정책이 본격 시행돼 매년 3억∼4억 달러어치의 식량 지원이 본격 시작된 2002년 하반기부터 2007년 말까지 북한은 인명 피해를 초래한 군사도발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효과도 있다. 우선 북한은 외부 지원으로 국가가 장악한 식량이 많아지면 배급제를 부활시킬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 돈을 벌어 살던 주민이 배급 500g 때문에 직장에 강제로 출근해 통제에 묶이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의 시장화에 역행할 수 있다.

북한의 농업제도 개혁도 늦어질 수 있다. 북한은 부족한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 농가 책임 경영제 등을 시범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지원으로 연명할 수 있다면 굳이 협동농장 체제를 허물 동기가 없어진다. 모니터링이 철저히 되지 않으면 지원 식량이 군량미 창고에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WFP의 현장 모니터링도 북한이 동의하는 접근 정도만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의 특성상 지원의 투명성을 완벽하게 보장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