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개인 일탈 아냐…문제는 한국사회 ‘강간 문화’”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
최종훈(왼쪽부터), 정준영, 승리.© 뉴스1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 앞 폭행 사건에서 시작된 일명 ‘버닝썬 사건’은 불법촬영과 성희롱·성폭행, 성매매 알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의 집대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같은 행위를 특정 개인들의 일탈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여성단체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여성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 아닌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며 폭력을 저지르고 남성 집단의 결속력을 다져 온 ‘강간 문화’의 맥락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폭력의 장’ 된 클럽들…여성 고객들 까맣게 몰라
사건의 무대가 된 클럽에서 교묘하게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자행돼왔음에도 정작 고객의 한 축인 여성들에게는 이번 사건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는 점이 ‘강간 문화’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를 “인기 연예인과 재력가 등이 소위 ‘밤문화’를 등에 업고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단순히 남성이 여성을 강간한다는 것을 넘어선 돈의 흐름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라고 정리했다.
구체적으로 “여성들은 돈도 받지 않고 (클럽에) 입장시킨다거나 하는 것은 그만큼 여성이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이를 통해) 남성들이 (클럽에) 와서 돈을 쓰고 여성들과 관계를 하는 부분이 드러났고 이제는 더이상 이런 식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상품화하고 악용하는 사례는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역시 “여성들은 (클럽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다중적·중첩적으로 벌어진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격차 상태”라며 “남성들은 (이와 같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더 높은 상태에서 가해자와 소비자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짚었다.
서울 강남구 클럽 ‘버닝썬’의 모습. 2019.2.14/뉴스1 © News1
◇빠지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여성혐오와 기술의 결합”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불법촬영 범죄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도 이번 사건에서 빠지지 않았다. 버닝썬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촬영 영상이 암암리에 퍼져 나간 것이 첫 시작이었다.
대검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전체 성폭력 범죄에 ‘카메라 등 이용촬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3.9%(517건)에서 2015년 24.9%(7730건)로 크게 증가한 상황이다. 일상적으로 불법촬영물을 소비하는 세태에서 유명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셈이다.
고이경 DSO(디지털성범죄아웃) 법무팀장은 “해당 사건은 기술의 고도화와 범죄 발생 양상 변화의 대표적 예시”라며 “기존에는 오프라인에서만 일어나던 성범죄가 디지털 기기, 사이버 공간으로 수단과 장소를 이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내재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 강간문화에 대한 인식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나타난 여성폭력이 바로 디지털 성범죄”라며 “여성을 동료 시민이자 인격체로 보지 않고, 존중해야 할 대상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한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18개 단체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클럽 ‘버닝썬’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를 규탄하고 나섰다. 2019.5.17/뉴스1 © 뉴스1
◇경찰 수사 끝났지만…분노한 여성들 집단행동 예고
경찰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여성들은 수사 결과를 규탄하며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있다. 클럽 버닝썬을 무대로 벌어진 각종 범죄가 공권력의 방조와 묵인이 더해져 일어났음에도 책임자와 연루자 규명이 미진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6차례에 걸쳐 혜화역 앞과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와 마찬가지로, 이들 집회의 주최측은 익명의 여성들로 꾸려졌다. 국가가 앞장서서 ‘버닝썬 사건’과 같은 여성 범죄 및 여성혐오를 근절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취지다.
이 소장은 “(이번 사건이) 정준영이나 승리 등 소수의 일탈이 아니라는 점, 조직적인 돈의 흐름이 있었던 것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뿌리가 뽑힌다”며 “이들만 처벌한다고 하면 ‘꼬리 자르기’에 지나지 않고 그 뒤에 있는 거대한 흐름과 조직을 일망타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이경 팀장 역시 “법은 필연적으로 사후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동시에 법 적용과 작용을 통해 예비적 특성도 가지고 있다. 처벌로 인한 반면교사, 동종 사건의 예방 효과가 그렇다”며 “그러나 법제를 이행하는 정부 및 수사기관이 시대와 사회상에 맞춘 인식을 갖지 않는다면 이 효과가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