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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한 지붕 두 나라

입력 | 2019-05-20 03:00:00

특권의 총체적 집합체인 대통령… 피해자처럼 ‘특권’ 운운, 분열의 언어
같은 땅에 사는 다른 세상 사람들… 文, 북-미 아닌 국내 조정자여야
총선 겨냥 지지층 결집 전략?… 선거, 國政 결과지 수단 아니다




박제균 논설주간

안타깝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의 고개를 넘으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문 대통령은 바뀔 생각이 시쳇말로 ‘1도 없다’는 것. 아니, 처음부터 없었는데 우리가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통령이 ‘통합’이나 ‘성장’, ‘안보’나 ‘기업’을 말할 때 그걸 어떤 변화의 전조(前兆)로 읽곤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읽고 싶어 했다. 문 대통령도 실제 국정 운영을 해보니까 달라지는구나, 하는 설익은 추측을 하면서.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대통령이 쏟아낸 언어들은 그런 일말의 기대를 여지없이 쓸어버렸다. 한마디로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내 길을 갈 테니,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아니면 말라’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따라가지 않으면 불이익 받지는 않을까….

대통령이 이즈음 여러 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했지만, 압축하면 이렇다. ‘한국 사회는 특권과 반칙이 지배해왔다→지금의 어려움은 그런 불평등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진통이다→이 시기를 견뎌내면 곧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야말로 특권의 총체적 집합체다. 그런 대통령이 집권 2년이 지나도록 피해자연(然)하며 ‘특권과 반칙’ 운운하는 게 피로감을 준다. 이쯤 됐으면 뭔가 성과를 보이고 입증해야 할 때가 아닌가.

특권을 한 몸에 누리는 대통령이 ‘특권’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분열의 언어다. 대통령부터 편 가르기에 앞장서니 대한민국이 점점 두 동강 나고 있다. 같은 땅 위에 살지만, 바라보는 하늘이 정반대인 국민이 점점 늘어난다. 흡사 ‘한 지붕, 두 나라’다. 이 두 나라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접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한다. 그러니 똑같은 사물이나 사건, 심지어 사고를 해석하는 방식부터 판이하다. 같은 나라에서 살지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쪽 세상에선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文비어천가’가 쏟아진다. 그쪽 세상에선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다른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대통령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딴죽만 거는 족속들이다. 그럴수록 ‘우리 이니’가 측은하고 애틋한 마음까지 든다. 하물며 ‘독재자’라고 부르는 자들이 있다니….

단연코 문 대통령의 통치를 ‘독재’라고 부를 순 없다. 진짜 독재는 ‘독재’란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과거 그런 시절을 생생히 겪었다. 그런데 누가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불렀다고, 아니 누가 그렇게 불렀다고 전했다는 이유로, 떼로 몰려들어 정신적 린치를 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독재 심리에 빠져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란 단어는 원래 근대 일본에서 영어의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번역한 말이다. 고대 로마나 프랑스 제1공화국의 집정관(consul)을 통령(統領)으로 번역하다가 프레지던트에는 대(大) 자를 붙였다. 우리에게는 상하이 임시정부 수반을 ‘대통령’으로 명하면서 굳어졌다.

그런데 영어의 프레지던트는 회의나 의식을 주재한다는 뜻인 ‘preside’에서 나왔다. 프레지던트는 회의에서 나온 이견(異見)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리더다. 대통령이란 단어의 원뜻에 통합의 지도자란 함의(含意)가 있는 셈. 그런 사람이 한쪽 편만 들고 회의를 편파적으로 주재한다면 그 회의가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가 내 편 네 편으로 갈려서 이전투구를 벌인다는 사실, 그것도 우리의 미래를 여는 데 10원도 보탬 안 될 과거 문제로 피 터지게 싸우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선 중대한 실정(失政)이다. 문 대통령이 중재자, 조정자로 나설 곳은 미국과 북한 사이가 아니다. 이 나라 안에 펼쳐진 두 개의 세상 사이다. 그런데 도리어 ‘독재자의 후예’ 운운하며 한쪽 진영의 깃발을 든다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대통령까지 여야의 극한투쟁에 가세하는 것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지지층 결집 전략이란 관측이 있다. 믿고 싶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얄팍한 계산이라고 본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치러진 선거 결과가 이를 웅변한다. 선거는 국정(國政)의 결과지, 수단이 아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