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란의 거센 반발로 중동에 전운이 감돌면서 볼턴 보좌관의 우선순위는 더 분명해진 듯하다. 미국이 중동에 핵 항모전단과 전략폭격기를 급파하고, 백악관이 대규모 군사병력의 파견을 내부적으로 검토한다는 기사들도 쏟아졌다. 미 정부와 언론의 관심은 온통 이란에 쏠려 있다.
그러면서 볼턴 보좌관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네오콘의 선봉에 선 그가 이처럼 강경한 미국의 대응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CNN 방송은 최근 그에게 ‘전쟁을 속삭이는 자(war whisperer)’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란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견제로 향후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하지만 볼턴 보좌관이 미 외교안보 정책의 조타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 볼턴 보좌관에게 북한은 계속 후순위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만일 이란에서 전쟁이 발발한다 해도 중동 지역에 국한된다. 게다가 이란은 아직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반면, 북한은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 본토로 쏠 수 있는 정권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위협 수위가 결코 이란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중동과 남미 상황이 진정되고 나면 북한이 언제 그의 레이더로 다시 들어갈지 알 수 없다. 이미 미사일 발사로 저강도 도발을 시작한 북한은 점차 그 수위를 높이며 미국을 시험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
최근 단독으로 방한하려던 볼턴 보좌관의 계획은 트럼프 대통령의 6월 방한 일정 등과 맞물려 일단 취소됐다. 북-미 협상의 장기 교착 속에 강경파 볼턴을 중심으로 한 과격한 대북 정책에 힘이 실릴 때를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으면 한반도 상공과 해역에도 언제 핵항모와 전략폭격기가 대거 급파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란을 놓고 벌어지는 미국 내부 정책과 참모진 간의 균열 등 흐름 또한 그래서 더욱 예의주시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