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 정부 미래차 대응 TF팀 위원장
이계안 미래차 대응 태스크포스(TF)팀 위원장은 “미래차는 자동차 분야를 넘어 우리 사회의 에너지 기반 자체를 바꾸는 기폭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하는 주 에너지원이 전기 또는 수소로 바뀌면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도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지난해 12월 미국 유통업체 크로거가 선보인 근거리 무인배송 차량 뉴로.
이진구 논설위원
“하하하. 아직은 잘 모른다. 세계적으로도 ‘이것이 미래차다’라는 정의는 아직 없다. TF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정부가 가진 그림은 있을 것 같아 보여 달라고 했는데 이런저런 개념은 있는데 딱히 ‘이거다’라는 건 없다고 하더라. 자율주행과 전기화, 차량 공유경제 등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첨단 자동차 시대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미래차와 함께 격변할 인류의 산업지도와 삶 전체를 포괄해 생각해야 한다.” (설명이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숱한 발명품 중에서 여성 해방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세탁기라고 한다.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줬으니까. 자율주행시대가 오면 사람은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차량 공유경제는 자동차 소비를 크게 줄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 산업과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이런 광대한 변화까지 포괄해야 하다 보니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그런 중장기 고민을 위해 TF를 만들었다는 건가? 보기 드물게 기특한데….
“지난해 말 핫이슈였던 광주형 일자리 문제를 대통령일자리수석이 담당했다. 나도 관여하고 있었고…. 또 경제수석실은 수소연료전지차를 담당했는데 둘 다 결국 현대·기아자동차가 상대였다. 그래서 내가 대학 동기동창인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걸 통합하면 더 포괄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포괄적인 접근이라니?) “광주형 일자리를 단순히 값싼 노동자를 고용해 차를 만드는 걸로 보지 말고, 다가올 미래차 시대에 노사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도적인 모델로 만들자는 것이다. 수소차는 자동차 연료를 바꾸는 것을 넘어 인류의 에너지 공급원이 바뀌는 데까지 확산될 수 있다. 각각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다루지 말고 이런 더 큰 목적과 방향을 갖고 통합해 접근하자는 취지였다.”
“별도의 총괄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일자리위원회 아래에 있으니까 마치 미래차로 인한 일자리만 다루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대통령이 위원장인 이 위원회를 잘 활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처 간 의견 조정, 자료 요구 등도 대통령 이름으로 하면 훨씬 수월할 테니까.”
―전기차, 자율주행차 이야기는 많이 나왔는데 왜 지금 미래차가 중요해진 건가.
“유럽연합(EU)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말 2030년까지 신차(승용차 기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1년 대비 37.5% 감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1년까지 EU에서 파는 모든 신차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km당 95g을 넘으면 안 된다. 그 5년 후는 81g, 또 5년 후는 67g 이하로 낮춰야 한다. 가솔린은 말할 것도 없고, 디젤차로는 도저히 이 기준을 맞출 수 없다. 그래서 아예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된 거다. 그리고 이 전환이 다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독일 폭스바겐은 2026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 개발을 하지 않고, 2040년부터는 내연기관차를 팔지 않겠다고 했다. 다임러와 BMW도 2025년까지 전기차 25종을 출시하겠다고 예고했다.
―더 큰 변화란 에너지 생산 기반의 전환을 말하는 건가.
―신재생 에너지는 안정적 공급이 어렵고, 우리는 국토가 좁아 태양광에 불리하지 않나.
“물론 우리나라는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불리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 윗세대는 철도, 기술도 없었지만 포스코(포항제철)를 만들었다. 내가 1988년 현대석유화학에서 공장 만들 때 책임자였는데, 그때 화공과 출신들이 미쳤다고 했다. 원료도 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만드느냐고….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수출하는 것 중 하나가 석유화학 제품이다.”
―전기를 사온다는 건가.
“얼마 전 남호주 정부 사람을 만났는데 한국이 전기를 사가면 어떻겠냐고 묻더라. 호주는 광활한 땅을 이용해 태양광 전기를 엄청나게 생산한다. 포항제철과 석유화학처럼 전기도 못 할 게 뭔가. 일본은 내년 도쿄 올림픽을 수소에너지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예산과 인프라를 늘리고 있다. 우리는 석유 석탄 우라늄 등 에너지 원료의 97%를 수입하는데 그걸 전기로 바꾸면 안 될 게 뭔가.”
―정부가 미래차를 위해 각종 지원을 하면 결국 현대·기아차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 것 아닌가. 더욱이 당신은 현대차 사장 출신인데….
“정부가 그런 지원을 하면 현대·기아차가 가장 크니 결과적으로는 가장 큰 이득을 보긴 할 거다. 하지만 이게 전체 국가를 위한 투자이지 개별 회사에 특혜를 주자는 게 아니지 않나.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주면 현대차가 특혜를 본다는 식인데…. 개별 회사가 그 엄청난 에너지 인프라를 깔고, 전기를 수입할 수는 없지 않나. 일본이나 미국은 자동차 회사가 많으니까 각자 전기차든, 하이브리드차든, 수소차든 맡아서 한다. 그런데 우리는 현대·기아차 혼자 다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데 정치권이나 정부에서는 미래차가 신성장 동력이라고 하면서도 ‘현대차 돈만 벌어주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자는 현대차를 위해 국가 예산을 쓴다고도 한다. 더욱이 정치권이든 현대차 사람들이든 두려워하는 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직권남용죄 때문에 나중에 세상이 바뀌면 자신들도 그렇게 될까 봐 몸을 사린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나?) “실제로 있다.”
―당신이 위원장이 된 이유가 뭔가? 현대차 사장 출신이어서인가.
“형식적으로는 TF 위원들이 투표 같은 걸 했지만…. 내가 위원들에게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20년 주기로 큰 위기를 맞고 살아난 과정을 이야기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국내 자동차 산업이 구조조정 위기를 맞았을 때, 현대가 반대로 30만 대 생산공장을 지어 성공한 것, 1998∼99년 외환위기 직후 현대도 정리해고를 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지만 역으로 기아차를 인수한 것 등이다. 기아차 인수할 때 내가 현대차 기획조정실장(사장)으로 책임자였고 인수 뒤에는 현대차 사장을 했다. 다시 20년이 지난 2019년 지금도 그때 같은 위기이자 기회인 때가 왔다고 말했는데 위원들이 그럼 그 경험을 살려 당신이 해보라고 하더라. 어떻게 하다 보니 현대에서 오일뱅크 인수에도 관여했고, 현대중공업에서 석유화학 공장 만드는 것도 하다 보니 좀 이것저것 에너지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있고….”
―미래에 전기차, 자율주행차 시대가 올 거라는 건 오래전부터 예상됐던 일 아닌가? 왜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늦었다고 그러는 건가.
“사실 늦었다고는 하지만 늦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우리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가 아니고, 기존 시장에 뛰어드는 입장이라 뭘 먼저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렇다.”
―미래차 시대가 축복일지 재앙일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새 기술로 인한 일자리는 물론 생긴다. 좋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이 40% 정도 적다. 여기에 차량 공유경제가 접목되면 차를 안 사는 사람이 많아질 테니 생산량도 줄게 된다. 일자리가 준다는 뜻이다. 부품업체, 하청업체, 카센터, 주차장 등 차와 관련된 분야는 물론이고 건축설계나 관련 제도 등 파생적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축복일지 비극일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피해 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는 카풀 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것도 재앙이고….”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