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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청정지역 농촌마을에 대규모 한우 축사라니…”

입력 | 2019-05-21 03:00:00


경남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주민들이 16일 마을 인근에 들어서려는 축사 건축을 반대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젊은이도 어렵겠지만 마을 옆 대규모 축사는 허용할 수 없소. 끝까지 막을 것이니, 떠나거나 법대로 하시오.”

뙤약볕이 따갑던 16일 경남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지수천 옆. 이 마을 상촌과 하촌 주민 50여 명이 펼침막을 들고 집회를 열었다. 60대 후반부터 80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을과 가까운 지수저수지 바로 아래에 들어오려는 한우 사육시설을 반대하는 행사였다. 남해고속도로 지수나들목과 지수면 소재지에도 ‘청정지역 망치는 축사 건축 결사반대’라는 펼침막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집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업주 김모 씨(38)에게 주민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청정지역에 축사가 들어서면 환경이 훼손된다는 이유다. 귀농, 귀촌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무엇보다 진주시 등이 개발행위 및 건축허가 과정에서 이해관계 주민들을 배제한 채 비밀리에 추진한 점이 문제였다.

김 씨가 “아버지 가업(家業)을 이어받아 축산을 하려고 큰마음 먹고 귀농을 했다. 평생 이 마을 주민이 되어 살 것이다. 40년 이상 사업을 할 각오이니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60대 초반의 한 주민은 “귀농 교육을 받을 때 ‘무엇보다 마을 주민의 마음을 얻으라’는 얘기를 못 들었느냐. 어른들을 완전히 무시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심지어 한 할머니는 “환경문제가 전혀 없는 시설이라면 당신들 땅에서 사업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주민들은 김 씨가 축사를 짓기 위해 최근 2800m²의 논에 터 닦기를 하기 전까지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주민 이모 씨(74) 등은 “2월에 허가가 났다지만 해당 농지를 매각한 하촌마을 이장만 사업과정을 알았을 뿐 시에서도 마을주민과 아무런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청원리 살리기 보존위원회’는 절차적 하자가 있는 부당한 허가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며 지수면 주민들 서명부를 첨부해 경남도 감사관실에 감사요청서를 냈다.

이에 대해 지수면 관계자는 “김 씨가 제출한 복합민원에 대해 농지전용, 환경문제, 개발행위 등 부서별 협의를 거쳐 허가를 했다. 절차에 문제는 없다”고 했다. 가축사육 제한이 돼지는 마을에서 1km, 한우는 300m, 젖소는 200m라는 것. 축사 예정지는 하촌마을에서 직선거리로 690m, 상촌마을에서 800m 정도 떨어져 있다.

보존위원회는 “축사 예정지는 저수지 바로 아래인 데다 승산리를 거쳐 청담리에서 남강에 합류되는 지수천(지방2급 하천)이 발원하는 곳이어서 오염원이 들어오면 안 된다. 악취와 수질오염은 막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 주민은 “8일 청원리 효도잔치에 참석했던 조규일 진주시장이 우리 마을에 대해 ‘쾌적할 뿐 아니라 부자(富者) 마을 체험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승산리에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엇박자 행정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날 주민들과 김 씨 대화는 성과 없이 끝났다. 주민 주장이 강경하고 김 씨로부터 땅을 다시 사들이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어 의견 접근을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김 씨는 “민가에서 가장 먼 곳을 골랐다. 첨단시설이어서 냄새와 오염물질 배출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주민 설득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청원리는 재령이씨 집성촌으로 결속력이 각별하다. 돌담길과 고가(古家), 정자(亭子)들이 잘 보존돼 있고 문화재도 많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