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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공기업 시니어들 ‘임금피크 노조’ 만든다는데…

입력 | 2019-05-21 03:00:00

[커버스토리]신보-거래소-기업銀 등 잇단 설립




높은 연봉으로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 공공기관에서 55세 이상 시니어 직원들이 이른바 ‘임피(임금피크제) 노조’ 설립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임피 직원을 위해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명예퇴직금(명퇴금)을 올려 ‘퇴로’를 열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통상 3∼5년인 임피 기간을 줄이고 그 기간에 해당하는 월급을 한꺼번에 받아 일찍 회사를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인사적체에 몸살을 앓는 공공기관들도 임피 대상자들이 갈수록 늘어나 골치다. 기관 전체가 고령화되고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직원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임피에 들어간 시니어 직원들이 한직으로 물러나 시간만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상당 부분 인력이 낭비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퇴직금 받아 일찍 나갈 수 있게 해 달라”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에선 관리직급 직원들을 중심으로 한 시니어 노조가 이달 초 설립됐다. 2018년 말 현재 기업은행의 임피 진입 대상자는 311명으로 금융 공공기관 중 가장 많다. 이들은 2016년 금융 공공기관에 임피제가 전면 도입되며 사라졌던 명퇴금 제도의 부활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는 곳이라 정부의 별도 예산 지원 없이도 일반 금융회사에 준하는 명퇴금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은행 하나만 명퇴제를 허용하면 공공기관들 간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신보)도 지난해 11월 금융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임피 노조를 설립했다. 신보의 2018년 말 기준 임피 진입 대상자는 244명으로 기업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에서도 지난해 임피 노조가 설립됐다.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인 서울보증보험에도 임피 노조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임피 노조의 주된 요구 사항은 통상 3∼5년인 임피 기간을 단축하고 이 기간에 받는 연봉을 한꺼번에 지급해 달라는 것이다. 이 기간에 대상자들이 받는 연봉은 임피에 진입하기 직전에 받았던 연봉에서 해마다 5∼10%씩 줄어든다. 그러나 금융 공기업은 명퇴제가 정례화돼 있지 않은 데다 가끔 명퇴 접수를 받을 때도 임피 기간에 받는 총연봉의 40∼50% 수준만 받을 수 있다. 일반 시중은행이 퇴직과 동시에 3∼4년 치 연봉을 한꺼번에 받고 나가는 것과 비교하면 명퇴금이 턱없이 적다.

임피 제도는 시니어급 직원의 정년을 3∼5년 연장하는 대신 임금을 줄이고 줄어든 비용으로 신입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임피 직원들의 연봉이 여전히 높은 편인 데다 이 제도가 시니어급 직원의 자리보전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신규 채용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관련 공공기관 12곳의 지난해 신규 채용 인원은 1106명으로 2017년 1153명 대비 오히려 4.1% 줄었다.

○ 금융당국, 임피 기간 줄이는 방안 검토

현행 임피 제도는 공공기관의 고령화도 갈수록 부채질하고 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금감원을 포함한 11개 금융 공기관의 임피 대상자는 2018년 1107명에서 2022년 2539명으로 늘어난다. 전체 임직원 대비 비중으로 따지면 5%에서 11.15%로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난다.

그러나 공공기관 임피제를 관할하는 기획재정부는 다른 공공기관은 그대로 둔 채 금융 공기관만 명퇴제를 정례화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KDB산업은행과 기업은행에서 모의실험을 했지만 조기 명예퇴직이 신규 채용에 주는 긍정적 효과도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금융 공공기관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임피 기간을 기존 대비 1∼2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큰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금융 공공기관의 인사적체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개선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