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재산 지키자” 金 투자액 지난달의 2배로 급증 안전한 달러-채권에 돈 쏠려 경제활력 저하 우려
20일 귀금속 매장이 밀집한 서울 종로3가. 부산의 한 사업체에 다닌다는 A 씨(62)가 부인과 함께 한 금은방에 들어섰다. 이날 하루 휴가를 내고 이곳을 찾은 A 씨는 1700만 원에 금괴 80돈(한 돈은 3.75g)을 산 뒤 여행용 가방 안쪽에 집어넣었다. “당분간 경제가 살아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하네요. 원-달러 환율도 어찌 될지 몰라 차라리 금괴 실물을 사서 보관하는 게 제일 안전한 것 같습니다.”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미중 무역 전쟁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중 자금이 금, 미국 달러,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액 자산가들은 물론이고 중산층도 수익률을 노린 투자보다 자기 재산을 지키는 방어적 전략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때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20일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7일까지 시중에서 매매된 순금 현물은 180kg으로 집계됐다. 금괴 수요가 크게 늘면서 약 2주 만에 지난달 전체 판매량(177kg)을 뛰어넘었다. 1월만 해도 월간 판매량이 53kg에 불과했다. 송종길 한국금거래소 전무는 “금값이 g 당 4만 원대 후반으로 상당히 올랐음에도 이처럼 금 거래가 늘어난 건 차익을 노린 투자라기보다 자산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부 시중은행에서는 공급량 부족으로 금괴 판매가 중단되는 일도 생기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 금융시장이 침체되면서 돈이 필요한 기업들이 쉽게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워진다. 국내에 있는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원화의 경쟁력도 낮아지고 그만큼 경기 회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안전자산 선호가 장기화되면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기업과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gun@donga.com·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