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10개중 1개 장기환자 차지
#장면2. 같은 날 밤 A 씨가 치료받은 병원에서 8km가량 떨어진 서울의 다른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병상엔 뇌경색 환자 B 씨(69·여)가 누워있었다. B 씨는 2013년 6월 뇌혈관이 막혀 쓰러졌지만 치료가 늦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후 5년 11개월간 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콧줄(레빈튜브)로 영양을 공급받으며 연명하고 있다. 의료진은 B 씨에게 더 이상 해줄 치료가 없다며 소형 병원 중환자실로 옮기길 권했지만 환자 가족들이 거부하고 있다.
○ 중환자실 장기 입원, 한 해 4000명
의학계는 중환자실 입원 기간이 석 달이 넘으면 대부분 집중 치료를 받아도 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본다. 연명치료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중환자실 입원 기간이 90일 이상인 환자는 모두 4164명이었다. 이 중 반년 이상 입원한 환자는 533명이었고, 수년간 입원한 환자도 33명이나 됐다. 전국 중환자 병상은 지난해 말 기준 1만229개다. 석 달가량 입원한 환자가 매 분기 1000명이 넘는 만큼 장기 입원 환자가 전체 중환자 병상 10개 중 1개를 차지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실이 개선될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중환자실 입원 환자는 계속 늘고 있다. 반면 중환자 병상은 2005년 1만2723개에서 2010년 1만547개로 줄어든 뒤 1만 개 안팎에 머물고 있다. 중환자실을 운영하려면 일반실보다 더 넓은 공간과 더 많은 의료 인력이 필요해 병원들은 최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거점 중환자실’로 숨통 틔워야”
전문가들은 당장 중환자 병상을 크게 늘릴 수 없다면 정부가 ‘거점 중환자실’을 만들어 숨통을 틔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형 종합병원에 적정 인력과 장비를 갖춘 중환자실을 지역마다 지정한 뒤 연명치료를 받는 비(非)응급 중환자들을 수용하자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빈 병상이 없어 응급 중환자가 제때 집중 치료를 받지 못하면 장기간 회복하지 못해 또다시 오래 입원하는 악순환에 빠진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필요하게 대형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사람은 보험금을 깎자는 의견도 있다. 이는 미국 등이 도입한 제도다. 현재 불필요한 장기 입원을 막기 위한 ‘입원료 체감제’는 일반 병상에만 적용되고 있다. 입원료가 원래 하루 10만 원이라면 8만 원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데, 입원 31일째부터는 6만 원만 지원한다.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병원과 환자의 부담을 늘리는 식이다. 반면 중환자실은 장기 입원해도 병원이나 환자에게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
환자단체도 중환자실 병상이 응급환자에게 우선적으로 배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응급 환자는 소형 병원을, 응급 환자는 대형 병원을 이용하는 ‘의료 전달 체계’가 정착돼야 중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들이 소형 병원을 신뢰할 수 있도록 의료의 질을 높여야 하고,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언제든 원래 입원했던 대형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