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여경 논란’에 경관들 하소연
이른바 ‘대림동 여자 경찰 사건’의 관할서인 서울 구로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2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연신 안타까워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술에 취한 사람이 난동을 부리면서 경찰에게 욕설을 퍼부어도 경찰은 ‘집에 가라’는 말로 달랠 수밖에 없는 공권력의 무력함인데 ‘여자 경찰 무용론’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사건 당시 현장 동영상을 보면 중국동포 허모 씨(53)가 출동한 남자 경찰에게 욕설을 퍼붓는데도 경찰은 “빨리 집에 가세요”라고 말한다. 남자 경찰의 뺨까지 때린 허 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현장의 경찰관들은 이번 대림동 사건은 여자 경찰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찰이 공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욕을 하고 멱살을 잡아도 인권을 침해했다고 민원을 제기할까 봐 참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치안 역량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남자 경찰에 비해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자 경찰이라도 삼단봉 등의 장구를 사용하면 남성도 제압할 수 있다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인권’이 강조되는 추세이다 보니 현장에서는 물리력을 사용하기보다는 말로 설득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지구대 여자 경찰관은 “경찰이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발 정서가 워낙 강하고 장구 사용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며 “혹시라도 나중에 책임질 일이 생길까 봐 물리력 사용을 다들 꺼린다”고 말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일 “직원들이 현장에서 ‘비례의 원칙’에 따라 대응하는 경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당한 공권력 집행에 저항하는 상대를 제압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력 행사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번 사건 이후 경찰 내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일선 현장을 책임지는 간부급 경찰들은 매달 한 번씩 현장 경찰에게 무도체포술 훈련을 시키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훈련이 주로 밤샘 근무 후에 이뤄지는 데다 평가 항목이 아니다 보니 교관도, 훈련을 받는 경찰도 형식적으로 시간만 때운다는 것이다. 중앙경찰학교에서 이뤄지는 체포 훈련도 현장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신입 경찰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서울의 한 지구대장은 “실제 현장에서 유용한 훈련은 전혀 없는 게 현실”이라며 “대림동 사건 여자 경찰이 무슨 잘못이 있나. 평소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조직이 문제”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여자 경찰관들은 자비를 들여 개인적으로 유도 등 무예를 배운다. 여자 경찰들도 제 몫을 하지 못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태권도와 합기도를 합쳐 7단인 한 여성 순경은 “같이 출동한 남자 직원들에게서 ‘네가 다치면 일이 커지니 나서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김은지·한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