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 더 다가가려는 노력 없이 트럼프와 진심으로 대화 가능할까
이승헌 정치부장
반면 25일부터 28일까지 트럼프의 일본 국빈 방문 스케줄은 빡빡하다. 특히 정상회담 외에 아베 신조 총리와 따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골프 라운드를 시작으로 스모 관람, 호위함 시찰 등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이런 차이는 단지 한일 간 국력 차 때문일까. 기자는 그게 이유의 전부라고 보지는 않는다.
아베 총리는 ‘한 국가의 정상이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트럼프에게 그야말로 들이댄다. 특히 골프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아베 총리는 2016년 11월 미국 대선 직후 트럼프에게 일본 혼마사의 금색 드라이버를 선물했다. 타이거 우즈가 사용하는 T사 드라이버의 시중가보다 비싼 3755달러(약 448만 원)짜리다. 2017년 11월 트럼프와 라운드할 때는 일본의 간판 골프스타 마쓰야마 히데키를 데려왔다. 아베 총리는 이번 트럼프와의 일전을 앞두고는 18일 6시간 연습했다고 한다. 골프는 미국인들에겐 야구만큼 보편적 여가활동(America pastime)이지만 트럼프에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잘 친다. 73세인데 80대 스코어는 거뜬하다. 부동산 제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두바이에 자기 이름을 딴 초호화 골프장 17개를 갖고 있다. 아베는 이걸 파고들었다.
외교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복잡한 외교안보 현안일수록 정상 간의 개인적인 소통이나 교감이 의외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첫 만남 직전까지 선물을 고민했다. 한미동맹 복원이 중요한 과제였던 순방. 참모들은 부채, 공예품을 아이디어로 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MB는 부시 부인 로라 여사가 애완견 ‘바니’의 건강 문제로 마음을 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워싱턴행 전용기에 애완견용 뼈다귀와 개목걸이를 실어갔다. 부시는 좋아하는 아내를 보고 MB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었고, 둘은 퇴임 후에도 종종 만나는 사이가 됐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이 지난달 워싱턴 회담처럼 또 다른 외교 참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급한 대로 구색을 갖춰 무미건조한 회의만 하다가 면전에서 또다시 ‘굿 이너프 딜’을 거부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비위까지 맞출 필요는 없겠지만, ‘당신과 소통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문 대통령만의 메시지를 줘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이 골프를 못 치니 박인비 박성현 등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를 주름잡는 여걸들을 청와대에 초대해 트럼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2017년 11월 방한 때 국회 연설에서 박성현을 언급하며 “미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US 오픈대회를 우승했다”며 유독 반가워했던 트럼프다. ‘일 이야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경상도 사나이의 무뚝뚝함은 외교 무대에서 그리 내세울 만한 게 못 된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