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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사이로 학생들 ‘곡예’… 보·차도 혼용도로서 교통사망 83% 발생

입력 | 2019-05-21 03:00:00

[생명운전 100명을 살린다] <6> 이면도로, 보행자 안전사각




10일 오후 경기 부천시의 한 중학교 인근 도로에서 학생들이 차도로 걷고 있다. 주정차 금지구역인 이곳의 보도까지 침범한 불법 주차 차량들 때문에 학생들이 차도로 걷게 되는 경우가 있다. 부천=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빵!’

10일 오후 3시 반. 경기 부천시 성주중학교 인근의 왕복 2차로 도로. 이곳을 지나던 승용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멈춰 섰다. 이 차량 앞에는 휴대전화를 손에 든 중학생이 서 있었다. 경적 소리에 놀란 표정이었다.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걷던 이 학생이 도로 오른편에 불법 주차돼 있던 차량들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나자 운전자가 경적을 울린 것이다. 운전자는 학생을 나무라듯 경적을 두어 번 울린 뒤 차를 다시 몰았다.

이 길은 본보가 2016년 3월 ‘제한속도 널뛰기 도로’라고 지적했던 곳이다. 당시 부천여중에서부터 심곡고가 사거리까지 약 2km 구간 도로의 제한최고속도가 30∼60km 사이에서 여섯 차례나 바뀌었다. 지금은 이 구간 제한최고속도는 모두 시속 30km로 맞춰져 있다. 보행자 안전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보행자들은 여전히 도로 곳곳에서 불안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 여전히 위태로운 보행자 안전


기자는 10일 부천여중에서 심곡고가 사거리까지 약 2km 구간을 둘러봤다. 3년 전 제한최고속도가 시속 30km, 60km, 30km, 40km, 60km, 30km, 60km로 들쑥날쑥해 운전자들의 혼란을 부른 구간이었다. 지금은 ‘생활도로 30’이라 쓰인 제한속도 안내 표지가 운전자들의 눈에 잘 띄도록 도로 노면에 표기돼 있다. 3년 전에 비해 불법 주정차 차량도 많이 줄었다. 학교 근처 보도는 울타리로 차도와 구분돼 있었다.

문제는 성주로에서 가지처럼 뻗은 이면도로들이었다. 성주로를 따라 성주초등학교, 부천남중학교 등 8곳의 학교가 밀집해 있다. 학생들의 이동이 많은 곳인데도 보행자 안전은 여전히 위태로워 보였다.

성주중 입구 삼거리에서 성주중 정문 사이에는 10여 대의 차량이 도로 양 옆에 불법으로 주정차돼 있었다. ‘주정차 금지’ ‘견인지역’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무색해 보였다. 보도까지 침범한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도를 걷는 학생도 보였다. 불법 주차 차량으로 실제 주행할 수 있는 도로 폭이 좁아지면서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오후 3시 반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 사이에서 불쑥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운전자가 학생들을 쉽게 발견하기 힘들어 보였다.

과속방지턱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천남중 앞을 지나 심곡로 방향으로 이어지는 왕복 2차로는 경사가 가팔랐다. 내리막 초입엔 ‘학교 앞 천천히’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하지만 차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르게 지나갔다. 과속방지턱이 그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위로 솟은 턱은 없었다. 노란색과 하얀색 페인트로만 칠해 놓은 노면 표지였다. 주민 이지원 씨(38)는 “이곳을 자주 지나다니는 운전자들은 실제로는 방지턱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속도를 안 줄이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보도-차도 구분 없는 도로 사고 4배나 많아

운전자들은 주택가 이면도로를 지름길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이면도로의 제한최고속도를 낮추려고 할 때마다 운전자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16일 오후 6시 반쯤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인근 이면도로에서는 제한최고속도인 시속 30km 이내로 달리는 차량을 찾기 힘들었다. 간선 역할을 하는 왕복 4차로 버드나루로가 정체를 빚을 때 한강성심병원 인근 이면도로를 지름길로 이용하는 차량이 많다.

이면도로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돼 있지 않은 ‘보도-차도 혼용 도로’인 경우가 많다. 보행자와 차량이 함께 다니는 길에서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돼 있는 곳보다 4배 이상 많은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보도와 차도를 나누는 분리시설이 있는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21만1363건(사망자 3721명, 부상자 31만9098명)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보도-차도 혼용 도로에서는 89만8624건(사망자 1만7920명, 부상자 134만6385명)의 교통사고가 났다. 이 기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2만1641명인 점을 감안하면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8명은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곳에서 피해를 당했다.

전문가들은 보행자와 차량이 함께 이용하는 도로는 도로 폭과 기능 등에 따라 보행자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면도로에서는 보행자가 항상 차보다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보행자와 차량이 함께 다니는 도로는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하고 제한최고속도를 낮추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주거·상업지역 내 보도가 없는 골목은 독일이나 영국처럼 제한최고속도를 시속 10∼20km로 낮추고, 보행자 교통사고 발생 시 운전자에게 묻는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車가 사람보다 빨리 가면 안돼’ 독일-네덜란드 법제화 ▼

‘보도-차도 혼용도로’ 선진국에선… 英, 사람 보행속도인 16km로 제한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보행자 안전을 우선에 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주거·상업지역에서 보행자와 자동차가 함께 다니는 도로의 제한최고속도를 시속 16km로 정해 놓았다. 조금 빨리 걷는 보행자의 속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 도로 곳곳에는 화단 등을 설치해 차량이 속도를 높이기 어렵게 만들어 놨다. 보행자가 많은 곳에서의 사고 발생을 줄이고 사고가 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네덜란드와 독일, 프랑스 등도 보행자 안전을 위해 차량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은 주거·공공지역에 있는 보행자와 자동차가 함께 다니는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보행자를 앞질러 갈 수 없도록 했다. 프랑스는 제한최고속도를 시속 20km까지 낮췄다. 이 나라들에서는 자동차와 보행자가 함께 이용하는 도로의 경우 전체 구간에서 보행자가 통행 우선권을 갖는다. 이 때문에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운전자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국내에서는 보행자와 자동차가 함께 이용하는 도로에서도 시속 2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차량이 적지 않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지난해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강동구 명일로 등 도로 폭이 6∼10m인 보행자-차량 혼용 도로 8곳을 대상으로 차량 주행 속도를 조사한 결과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24.5km였다. 규정 속도(시속 30km)를 넘겨 시속 37km로 달리는 차량도 확인됐다. 도로 폭이 넓을수록 차량 평균 주행속도는 빨랐다. 핀란드 헬싱키시 교통국 연구에 따르면 시속 30km로 달리는 차량에 부딪힌 보행자가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은 시속 20km의 차량에 비해 4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른미래당 주승용 의원은 올해 2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과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보행자 우선 도로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고 차량 운행에 대한 제한 규정 등을 추가하겠다는 취지로 발의했는데 아직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 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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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